기숙사 찾아가 이별 통보 여친 살해…룸메이트에게도 칼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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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이 들린 202호는 갓 취업한 스무살 신입사원 김 모 씨와 그의 입사 동기인 임 모 씨당시 22·여가 함께 살던 곳이다.
202호 문 앞 바닥은 검붉은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어 심각한 상황임을 알려줬다. 위급함을 느낀 직원들이 "문을 열어라"며 발로 차고 두드렸지만 꼼짝하지 않았다.
곧이어 비명이 끊겼고, 범인은 흉기와 자기 소지품을 챙겨 창밖으로 뛰어내려 도주했다. 얼마 못 가 체포된 범인은 김 씨의 동갑내기 남자 친구인 이 모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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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쯤 감옥 갔다 오면 그만"…이별 통보한 여친에 협박
사건 발단은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2월, 김 씨는 한전 고졸 신입사원 채용 시험에서 합격해 입사했다. 짧은 인턴 생활을 마친 후 연수원에서 교육받던 김 씨는 이 씨를 만나 빠르게 가까워졌다.
두 사람은 3월 초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얼마 후 김 씨는 태백지사, 이 씨는 제천지사로 발령 나면서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다.
약 5개월 뒤, 김 씨는 친구들에게 "이 씨의 집착이 너무 심해서 헤어지고 싶다"고 토로했다.
결국 김 씨가 성격 차이로 이별을 통보하자, 이 씨는 "네가 나랑 헤어지고 회사에 다닐 수 있을 것 같냐", "신고하려면 신고해 봐라. 1년쯤 감옥 갔다 오면 그만이다.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우리나라의 법이 강하지 않다"고 협박했다.
게다가 이 씨는 김 씨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수십 통의 부재중 연락을 남겨놨고, 무작정 회사 전화로 연락하기도 했다.
심지어 제천에 있는 이 씨는 말도 없이 태백까지 김 씨를 찾아오기도 했다. 이 씨의 협박은 점점 심해졌고, 욕하고 소리를 지르다가도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며 우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태도를 보였다.
사건 발생 이틀 전인 9월 14일, 김 씨는 이 씨에게 "더는 못 사귈 것 같다"며 이별을 고했다. 그러자 이 씨는 막무가내로 김 씨를 차에 태우더니 광주로 끌고 갔다. 이 씨는 고속도로에서 위험하게 운전하며 김 씨의 휴대전화를 창문 밖으로 던지기도 했다.
이어 이 씨는 광주의 한 모텔에서 김 씨의 목을 조르며 협박을 이어갔고, 김 씨는 "제발 집에 보내달라"고 사정했다. 다음 날이 돼서야 이 씨는 김 씨를 청주에 내려줬다.
하루 동안 공포에 떨었던 김 씨는 곧장 수원에 사는 동기를 찾아가 모든 일을 털어놨다. 동기의 도움을 받아 휴대전화를 새로 샀고, 사건 당일인 9월 16일 아침 태백으로 출근했다.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흉기 들고 여친 찾아가 칼부림…룸메이트도 참변
이날 이 씨는 김 씨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태백에 찾아갈 테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다시 만나달라"고 요구했다. 김 씨가 "더는 할 얘기가 없다"며 거절했지만, 이 씨를 말릴 수 없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태백으로 향하던 이 씨 손엔 흉기가 들려 있었다. 이 씨의 부름에 김 씨는 룸메이트 임 씨에게 "지금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혼자 가기 너무 무섭다. 나를 좀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김 씨와 이 씨는 사택 앞에서 1~2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당시 임 씨는 김 씨의 귀가가 늦어지자 직접 찾아가 "시간이 늦었으니 이제 들어가자"고 말했다.
그러자 이 씨는 "남의 연애사에 신경 끄시고 혼자 들어가시죠"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겁먹은 김 씨는 "언니 제가 11시까지 들어갈게요. 먼저 들어가세요"라며 임 씨를 돌려보냈다.
이후 두 사람은 깔끔하게 헤어지기로 합의했고, 이 씨는 김 씨를 사택 현관까지 데려다줬다. 마지막으로 이 씨가 "난 널 쉽게 못 잊을 것 같다. 넌 날 잊을 수 있겠냐"고 묻자, 김 씨는 "난 널 쉽게 잊을 수 있다. 너랑 사귀는 동안 싫은 걸 꾹 참고 사귀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씨의 이 말은 곧 비극이 됐다. 김 씨가 집에 들어가려고 몸을 튼 그 순간, 이 씨가 무방비 상태인 그의 목을 흉기로 찌른 것이다.
이때 집 안에서 김 씨의 비명을 들은 임 씨는 문을 열고 뛰쳐나와 맨손으로 이 씨를 막아섰다. 그러나 이는 역부족이었다.
이 씨는 임 씨의 목을 5~7차례 흉기로 공격했다. 임 씨는 온 힘을 다해 방으로 달려가 문을 잠그고 경찰에 신고했다. 임 씨는 목이 찔려 성대가 심하게 다쳤지만, 경찰에 신고하자마자 정신을 잃었다.
같은 시각, 비명을 들은 직원들이 나타나자 이성을 잃은 이 씨는 쓰러져 있는 김 씨를 35차례나 추가로 공격했다.
정신이 번쩍 든 이 씨는 그제야 겁에 질려 흉기와 자신의 휴대전화 등 소지품을 모두 챙겨 2층에서 뛰어내려 도주했다. 그는 추격 끝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살인 및 살인 미수 혐의로 붙잡혔다.
◇휴대전화엔 살인 미수 형량 검색…"협박하면 다시 사귈 줄"
김 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과다출혈로 현장에서 사망했고, 소방헬기로 병원에 후송된 임 씨는 신속하게 치료를 받아 목숨을 건졌다. 경찰은 이 씨를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이 씨는 "술을 마셔서 기억나지 않는다. 제가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며 심신 미약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 씨는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상황인데 흉기를 챙겼고, 태백으로 향하던 중 휴대전화로 살인 미수, 살인 미수 형량 등을 검색했다.
아울러 이 씨는 사택 앞에서 김 씨와 나눴던 대화만큼은 매우 자세하게 진술하기도 했다. 이 씨는 "태백으로 떠나기 전 집에서 소주 한 병 반을 마신 뒤 출발하려고 하는데 마침 흉기가 생각났다"며 "내가 흉기로 협박하면 무서워서라도 다시 사귀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내가 김 씨를 죽이지 않으면 자존심이 짓밟히는 기분이었다"며 "임 씨도 함께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목을 찌르면 바로 죽는 것을 보고 목을 찔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임 씨의 방문이 잠겨 있어서 그만큼밖에 못 찔렀다. 그 정도 찔렀으면 죽었을 거라 생각해 김 씨에게 갔다"고 덧붙였다.
이 씨의 이 같은 주장에 목격자이자 피해자 임 씨는 "당시 이 씨와 1m도 안 되는 거리에서 대화를 나눴는데 전혀 술 냄새가 나지 않았고, 발음도 또박또박해 술에 취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동시에 김 씨의 친구들은 "김 씨가 그 순간 이 씨를 자극할 만한 말을 할 성격이 아니"라며 우발적 살인이 아닌 계획적 살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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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학생, 가정환경 불우했다"…배심원 앞 눈물 쏟은 악마
이번 사건은 이 씨의 범행이 계획적이었는지 우발적이었는지를 따지는 게 쟁점이었다.
검찰은 이 씨가 △집에서 흉기를 챙겨간 점 △버스 안에서 살인 미수를 검색한 점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피해자와의 마지막 대화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점 △직원들이 말렸음에도 피해자를 35차례 찌른 점 △겁에 질려 도주했다면서 자신의 소지품을 들고 달아난 점 △평소에도 협박과 스토킹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며 피해자를 괴롭게 한 점 △구속된 지 4개월 동안 재판부에는 반성문을 6번이나 제출했으나 피해자 측엔 사과 편지나 피해 보상 등 행위를 하지 않은 점 등을 언급하며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자 이 씨 변호인은 그가 고등학생 때 받았던 공로상, 학업 우수상, 장학금 증서 등을 증거로 제출하며 성실한 학생임을 강조했다.
또 이 씨가 5세였을 때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손에 자랐고,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중국인 새어머니를 맞았다는 둥 불우한 가정환경을 내세우면서 동정심을 유발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씨는 갓 스무살로, 미성년자나 다름없다. 살인을 계획했다면 살인이라고 검색했을 것"이라며 "살인 미수라고 검색한 것으로 보아 흉기를 가지고 협박하는 게 살인 미수라고 오해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 씨의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는데, 이 씨는 재판 내내 배심원단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에 이 씨 변호인은 "이렇게 여리고 내성적인 성격의 피고인이 실수했다"고 강조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 씨 변호인은 "교통사고든 약품이든 흉기든 생명을 잃었다는 결과는 같을 뿐, 수단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수단을 기준으로 형량을 정하지 말아달라"고 목소리 높였다.
◇法 징역 20년 선고…"출소하면 41세, 평생 죄인으로 살길" 울분
배심원들은 우발적 범행이었다는 이 씨 측 손을 들어줬다. 그 결과 이 씨에게는 징역 20년이 선고됐다. 이에 검사 측에서 항소했지만, 2심에서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 사건 관련 한전 관계자는 "태백 사건 이후 신입사원 채용 시 심리적인 테스트를 강화하는 등 인성 심사 비중을 높였다"며 "사건 당사자가 모두 같은 회사 직원이라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다시는 끔찍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후 김 씨의 친구 A 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사건을 알리면서 울분을 토했다.
A 씨는 "김 씨가 세상을 떠난 지 4개월이 됐다. 하지만 이 사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다"며 "그럼 20년이 지난 뒤에도 이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요?"라고 적었다.
이어 "전 20년 뒤 그 XX가 세상에 나와서 똑바로 사는 모습 절대 못 본다"며 "두 사람의 인생을 망쳐놓고 고작 20년형이 선고됐다. 출소하면 41살인데, 충분히 새로운 시작할 수 있는 나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글을 올려 이슈몰이하는 게 친구한테 미안하고, 친구의 가족한테도 죄송스럽지만 제발 이 사건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4월 김 씨와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밝힌 누리꾼은 "벌써 친구가 떠난 지 10년이 됐다. 당시엔 스무 살이라 잘 몰랐는데 되돌아보니 사건이 정말 많이 묻혔더라. 가해자는 10년 뒤 혹여나 가석방되면 몇 년 뒤에 나올 텐데 평생 죄인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분노했다.
sb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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