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피살 10대 여성 아버지 "내 약 사러 나갔다가…마지막 통화일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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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전남 순천시에서 30살 남성이 길을 걷던 1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가운데, 피해자 ㄱ18양의 아버지가 “자식 잃은 부모 마음을 누가 알겠느냐”며 “피의자에 대한 신상공개와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30일 뉴스1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ㄱ양 아버지 인터뷰를 공개했다. ㄱ양 아버지에 따르면, ㄱ양은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약을 사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살해당했다. ㄱ양 아버지는 “‘아빠 약국에 약이 없대’라는 말이 마지막 통화가 됐다”며 “더 이상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한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매체에 말했다. ㄱ양은 최근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경찰관을 꿈꿨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피의자가 ‘일면식 없는’ ㄱ양을 살해했다는 이유로 이 사건을 단순 ‘묻지마 범죄’처럼 다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여성 혐오적 인식에 기반해 자행되는 각종 폭력의 심각성이 흐려지고 대응도 미온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이날 한겨레에 “현재까지 보도된 사실로 미루어봤을 때 이 사건에는 △타겟팅 분명 △범행 동기 없음 △범행 결과 잔혹이라는 혐오범죄의 3가지 특성이 모두 엿보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분노, 격분, 정신이상이 범행 동기가 되어 대상자를 타겟팅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르는 ‘묻지마 범죄’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허 조사관은 “가해자가 범행 전 여자친구와 다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여자는 다 똑같다’, ‘여자는 없어져야 한다’는 인식이 증폭되면서 10대 여성을 타게팅피해자 선별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허 조사관은 여성혐오 범죄의 기저에는 “여성을 살해했을 때 사회적 비난이 적다”는 점이 작동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노인이나 아동을 살해했을 때와 달리 여성, 특히 ‘밤늦게 돌아다닌 젊은 여성’을 살해했을 때는 피해자에 대한 그릇된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가해자에 대한 비난 정도가 약해진다는 점을 가해자도 알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분풀이성 범죄’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백래시페미니즘에 대한 반발가 심해지면서 여성을 성적 또는 화풀이 대상으로 삼아 폭력을 가하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제어가 안 되는 수준까지 치닫고 있다”며 “지난해부터 ‘일면식 없는 남성에 의한 살인’이라는 통계 분류를 처음으로 추가했을 정도”라고 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09년부터 해마다 ‘분노의 게이지’라는 이름으로,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 살인미수 포함’ 건수를 취합해 분석 결과를 발표해 왔는데, 지난해 ‘일면식 없는 남성에 의한 여성 살인’ 건수를 처음으로 추가했다. 그 결과 지난해 여성 88명이 일면식 없는 남성에게 살해되거나 살해될 뻔한 것으로 집계범행 저지하려다 피해를 입은 행인·경찰 등 4명 포함 됐다. 연령별로는 20대 16명27.5%, 10대 15명25.86%로 10~20대가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나, 다른 연령대에서도 고루 피해 사례가 확인됐다. 송 대표는 “모니터링 결과 ‘일면식 없는’ 가해자에게 살해미수 포함 당한 피해자 다수는 여성으로, 젠더화된 피해 양상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소주 네 병을 먹고 여성으로 식별되는 사람을 찾아 공격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여성을 특정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혐오 범죄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 이유가 여성 때문이라는 증오심에 기인하며, 여성이라면 누구든 범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을 퍼뜨린다는 점에서 더욱 엄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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