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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을 끝낼 유일한 길"…스위스로 떠나는 한국인들[어떤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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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5회 작성일 24-09-23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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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회복 가능성 없는 환자들의 희망
쉽지 않은 스위스 승인 절차
지난해 디그니타스 한국인 회원 162명
편집자주죽음은 모두가 겪는 일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선뜻 내뱉기 어려운 금기어다. 특히 존엄한 죽음과 자기 결정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나 사회적 논의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저마다 윤리·종교적 문제 제기를 의식해 언급 자체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경제는 조력 존엄사에 대한 공론의 장 마련을 위해 국내 상황, 입법, 찬·반론, 해외 사례, 전문가 의견 등을 총 6회에 걸쳐 진단한다.
quot;통증을 끝낼 유일한 길quot;…스위스로 떠나는 한국인들[어떤 죽음]

디그니타스 홈페이지. [이미지출처=디그니타스]

2020년 가을 조모씨79는 유방암이 뼈로 전이됐다는 선고를 받았다. 날 선 칼이 뼈 마디마디를 무차별적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시작됐다. 그 누구보다도 긍정적이고 활발한 사람이었지만 극심한 고통까지 이겨낼 수는 없었다. 항암 치료의 부작용으로 머리카락, 손톱, 발톱은 다 빠졌다. 손발의 피부는 벗겨졌고,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결국 암은 위장, 폐, 피부로 전이됐고 병원 생활은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었다. 언제부턴가 통증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조씨의 딸 남유하씨는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중환자실이나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고통이 너무 심한 탓인지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놔 너무 놀랐다”며 “스위스에 외국인을 위한 조력 존엄사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 어머니의 유일한 희망이 됐다. 가족들은 어머니의 결정을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고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봄 큰 언니가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떠나면서 조씨의 마음은 더 확고해졌다. 언니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는 삶이 탐탁지 않았다. 의료기술의 발달이 수명을 연장했지만, 대부분 삶의 끝은 병원 침대였다. 이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원치 않는 사람도 있다. 조씨는 병원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것보다 자신의 온전한 의지로 끝까지 살고 싶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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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하씨와 어머니가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남유하씨]

스위스 디그니타스에서 조력 존엄사를 위한 ‘그린라이트허가’를 받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수많은 서류부터 까다로운 승인 절차까지 두 달 가까이 걸렸다. 특히 병력을 기록하는 라이프 리포트 ‘우울하다depressed’ 표현이 문제가 됐다. 문서상 ‘depressed’는 은유적인 표현이고 문화적 차이에서 발생한 오류임을 설명해야 했다. 영문 의료 기록은 처음에 너무 간단히 작성돼 다시 보내야 했다.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위한 여정은 쉽지 않았고, 한 단계 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심리적 압박감은 커져만 갔다. 다행히 조씨는 딸의 도움을 받아 모든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조씨의 마지막 소원은 다른 중증 환자들이 부디 우리나라에서 존엄하게 생을 마감했으면 하는 것이다. 일단 낯선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정서적인 불안감이 크고, 환자에게 스위스로 가는 13시간의 비행은 또 다른 고통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는 남은 시간이 너무나 절실하다. 그런데 조력 존엄사의 부재로 인해 사랑하는 이들과 보내야 하는 간절한 시간을 서류 준비, 스위스 이동 등에 허비해야 한다. 조씨는 딸에게 “나 같은 사람들이 절대 이렇게 고생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매일같이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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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스위스로 떠나는 환자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2022년 박모씨는 대장암 수술을 받았는데 현재 전이가 돼 복막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복막암은 희소암으로 초기 증상이 없어 조기 진단이 어렵다. 사실상 복막에서 암이 발견되면 이미 병은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된 경우가 흔하다. 박씨의 어머니는 10년 동안 난소암 투병 끝에 2017년 사망했다. 그때 암 투병 생활의 끝을 경험해봤기에 그의 스위스행은 역설적이지만 마지막 잎새와 같다.


박씨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병원에서 주는 약은 효과가 떨어져만 간다. 이제는 혼자 집에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덜 아플 때 스위스로 가는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박씨는 “조력 존엄사는 언젠가는 도입될 제도이다. 왜 이렇게 시간을 끄는지 모르겠다”며 “사람으로서 생의 마지막을 고통 없이 갈 수 있는 권리는 존중해줘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디그니타스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의 조력 존엄사를 돕는 비영리단체이다. 해당 기관을 통해 2016년 1명, 2018년 1명, 2021년 1명, 2022년 1명 2023년 3명 등 한국인들이 생을 마감했다. 한국인 회원 수는 2018년 32명, 2019년 58명, 2020년 72명, 2021년 104명, 2022년 117명, 2023년 162명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디그니타스 측은 이메일을 통해 “우리의 목표는 디그니타스가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되는 날”이라며 “다른 국가들의 법이 개정돼 전 세계 사람들이 스위스로 오지 않고, 삶에 있어 마지막 선택권을 갖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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