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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왔는데 "차 문 열지 마"…47년 전설의 도어맨 비결 [더 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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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33회 작성일 24-07-1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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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 ‘전설의 수문장’ 조선호텔 도어맨 권문현
권문현 조선호텔 도어맨이 호텔 로비에서 손님을 맞고 있다. 전민규 기자

권문현 조선호텔 도어맨이 호텔 로비에서 손님을 맞고 있다. 전민규 기자


‘칼주름’ 잡힌 검은색 양복바지에,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 ‘2대 8’ 가르마로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가슴팍에 달린 ‘앤드루 권Andrew Kwon’ 금속 명찰.

지난 11일 오전 조선호텔 입구에서 만난 도어맨 권문현71 지배인은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손님을 맞느라 분주했다. 도어맨은 호텔 서비스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는 “매일 500번 이상, 많을 때는 1000번씩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고개를 숙인다”고 말했다. 도어맨으로 47년 호텔 밥을 먹었으니, 아마도 서울 사대문 안에서 가장 많이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동료인 30대 도어맨이 막 도착한 차량 번호 ‘1OOO’ 세단 뒷자리 문을 잡아 열려 했다. 그때 권 지배인이 뒤에서 입을 가린 채 “문 열지 마”라고 귀띔했다. 이 차의 ‘회장님’은 도어맨 대신 운전기사가 직접 문을 열기 원하기 때문이다. 단골 차량 번호를 미리 외우고 있기에 가능한 판단이다. ‘프로 의식’의 시작이 궁금해졌다.

■ 시골 촌놈 ‘신세계’에 눈을 뜨다
1977년 입사, 매일 오전 5시30분 출근
많을 때는 하루 1000번씩 고개 숙여
신문 인물·동정란 꼭 읽고 스크랩


Q : 1977년 조선호텔에 입사했다고 들었습니다.
A : “53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마늘 농사를 짓고, 양봉도 했지만 신통치 않았죠. 대구에선 큰누나 단칸방에 얹혀살며 주물 공장에 다녔습니다. 무쇠 조각과 석탄 뭉치를 들것에 실어 2층 용광로로 옮기는 일을 했습니다. 76년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터널 공사 현장에서 시멘트 바르는 일을 했습니다. 함께 일하던 친구가 ‘호텔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다던데, 지원해 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한 번 가본 적 없는 호텔이었지만, 멋진 신세계일 것만 같았습니다. 그날로 면접을 보러 갔고, 5일 만에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도어맨’ 권문현의 시작이었죠.”

Q : 일과가 어떻게 됩니까.
A : “호텔 입구에 서서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합니다. 호텔엔 오전 5시30분까지 도착합니다. 47년 동안 단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어요. 출근하면 그날 어떤 VIP가 호텔에 오는지, 행사가 있을 경우 인원과 동선도 확인합니다. 퇴근할 때까지 점심시간 30분을 빼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죠. 손님 차 문을 여닫고, 안내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짐을 옮겨달라거나, 택시를 불러달라거나, 약을 사달라거나 손님이 원하는 건 되도록 해드립니다.”

Q : 2013년 60세로 정년퇴직한 뒤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 스카우트돼 10년간 일했습니다. 조선호텔의 간곡한 요청으로 지난해 7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고요. ‘70세 정년 연장의 꿈’을 이룬 비결이 궁금합니다. 조선호텔 측은 “나이를 불문하고 도어맨을 비롯한 호텔리어에게 프로 의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며 “권씨를 찾는 VIP도 있어 말 그대로 삼고초려했다”고 설명했다.
A : “서비스는 디테일detail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택시를 타고 온 손님은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수증을 받기까지 몇 초가 걸리는 만큼 속으로 ‘하나, 둘, 셋’ 센 뒤 문을 엽니다. 날씨가 덥거나 추울 때도 마찬가지로 차 문을 천천히 열고요. 단골은 한 발 더 들어갑니다. 차에서 내릴 때마다 벗었던 신발을 갈아 신는 습관이 있는 손님도 민망하지 않도록 차 문을 늦게 엽니다. 많이 챙겨주기를 바라는 손님에겐 고개를 45도 숙이고, 부담스러워하는 손님에겐 고개를 15도 숙일 정도로 신경 씁니다. 즐겨 찾는 동선이 있을 땐 먼저 안내하기도 하고요. 어느 서비스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도어맨에게 요구하는 디테일은 그런 것 아닐까요.”
지오바니 안젤리니 조선호텔 총지배인왼쪽이 1980년대 초반 연말 행사에서 권씨에게 모범사원상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조선호텔]

지오바니 안젤리니 조선호텔 총지배인왼쪽이 1980년대 초반 연말 행사에서 권씨에게 모범사원상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조선호텔]

그를 만난 11일은 마침 ‘인구의 날’ 기념행사가 호텔에서 열렸다. 장관과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부터 외국인 교수, 유모차를 끌고 온 다둥이 가족까지 수백 명의 참석자로 로비가 북적였다. 이날 지인을 만나러 호텔에 들른 염재호 태재대 총장전 고려대 총장은 그를 알아보고 “아이고 지배인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라며 얼싸안았다. 장관부터 대형교회 목사까지 그를 알아보고 인사하거나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관광 산업을 위해 노력하는 호텔 직원들의 수고가 많으십니다’라고 쓴 편지를 받은 적도 있다”고 술회했다.

Q : 도어맨이 손님을 알아보는 게 아니라 손님이 도어맨을 알아보네요. 다른 도어맨과 차이를 가른 당신만의 디테일은 무엇입니까.
A : “사람은 누구나 알아주길 바랍니다. 특급호텔을 자주 찾는 고객이라면 더 그렇죠. 도어맨은 사람보다 차량부터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단골 이름과 차량 번호, 성향을 함께 기록해 놓는 편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개인 차량 번호도 기억합니다. 체어맨 ‘4672’. 많을 때는 350개까지 외웠습니다. 외교관 차량은 국기까지 외우죠.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부터 읽습니다. 인물·동정란은 꼭 읽고, 중요한 내용을 스크랩합니다. 특급호텔엔 아무래도 정치인, 고위 관료, 기업인 등 VIP가 많이 오니까요.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고객에게 “사장님”이라고 정확하게 불러드리면 아무래도 기분 좋지 않겠습니까.”

Q : 특급호텔 손님은 좀 다릅니까.
A : “처음 호텔에 입사했을 땐 손님에게 거수경례를 하기도 했습니다. VIP가 오면 호텔 앞 교통을 통제하고 로비에 붉은 카펫을 깔 정도였으니까요. ‘과잉 의전’의 시대였습니다. 최근엔 예전처럼 손님이 다짜고짜 ‘어이’ 반말부터 하거나 욕하는 경우는 줄었습니다. 하지만 특급호텔인 만큼 손님들이 ‘돈을 낸 만큼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강한 건 사실입니다. 진짜 재벌은 겸손한데, 어중간한 부자가 오히려 안하무인인 경우도 있죠. 소위 말하는 ‘진상’ 손님도 종종 겪습니다.”
2000년대 초반 호텔 사보에 실린 권문현 도어맨. 당시만 해도 특급호텔을 드나드는 손님 대부분이 정·관계 고위 인사나 기업인이었다. 과한 의전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았다. [사진 조선호텔]

2000년대 초반 호텔 사보에 실린 권문현 도어맨. 당시만 해도 특급호텔을 드나드는 손님 대부분이 정·관계 고위 인사나 기업인이었다. 과한 의전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았다. [사진 조선호텔]

호텔에서 그의 별명은 ‘폭탄 처리반’이다. 다른 직원이 두 손 두 발 다 든 진상 손님도 곧잘 달래서다. 그는 “잔뜩 화난 손님은 조용한 곳으로 모셔서 10분이고, 20분이고 무조건 듣는다”며 “화를 가라앉힐 때까지 충분히 듣고 난 뒤 설명해 드리면 풀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명함을 꼭 받아둔다. 다음에 왔을 때 조금이라도 더 신경 쓰기 위해서다. 그도 사람인지라 답답할 때면 속으로 몇 번이고 이렇게 되뇐다고 했다. ‘내 앞의 손님은 진상이 아니라 애정 고객이다. 애정이 있어야 지적도 한다. 호텔을 다시 찾기 싫은 고객이라면 조용히 떠날 것이다. 문제를 지적하고 불편함을 표시하는 건 다시 방문할 마음이 있어서다. 관심을 가져달라는 뜻이다.’

■ VIP들이 먼저 인사하는 도어맨
고객들 이름·성향 꼼꼼하게 기록
노무현 의원 시절 차량번호 아직 기억
부사장서 승진한 단골엔 바로 “사장님”

Q : 스트레스가 심할 것 같습니다.
A : “세상에 만년 갑으로만 사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일하는 동안 변하지 않은 마음가짐이 하나 있습니다. ‘손님이 왕은 아니지만, 손님은 손님이다’. 손님이 누릴 수 있는 서비스는 최대한 제공하되, 왕이기 때문에 다 해주는 식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손님도 도어맨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 당당한 자신감을 갖고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손님 상대하느라 쌓인 스트레스는 집으로 가져가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권씨가 2008년 조선호텔에서 받은 30년 장기근속 표창장. [사진 조선호텔]

권씨가 2008년 조선호텔에서 받은 30년 장기근속 표창장. [사진 조선호텔]

호텔 도어맨 대부분은 20~30대다. 그의 딸보다도 훨씬 젊다. 동료에게 ‘꼰대’가 되지 않는 법을 묻자 그는 “어설프게 살갑기보다 무뚝뚝한 게 낫다. 꼭 필요한 말만 하려고 한다. 생각 없이 흘러넘치는 말이 없도록 말수를 최대한 줄인다”고 말했다. 이어 “내 일은 철저하게 한다. 나의 일하는 방식을 동료에게 강요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억지로 친해지지 않으려 할 뿐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같은 SNS도 직접 한다. 동료 또래의 정서는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그는 한때 에어컨·히터 있는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대부분 직장을 떠났고,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 여전히 현역이다. 허리 아픈 건 물론이고 살찔 틈도 없었다. 평생 덥고, 추운 호텔 입구에서 수문장으로 일한 덕분이다. 이제는 친구들이 그를 부러워한다. 강자가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사람이 강자라 했나. 아무나 오래가는 것은 아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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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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