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매장 안 절박함…손끝에서 피어나는 나의 삶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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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태의 자영업 탐구보고서 ② 수공예 공방 운영하는 은미씨
쉽게 시작하고 쉽게 망하는 공방
2년 넘기는 공방 많지 않아
SNS에 목매달고 유행 쫓아야 하지만
‘무언가를 해보자’는 나의 길 찾는 여정

우리가 일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섭니다. 우리가 일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퇴근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퇴근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일하지만 정해진 월급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자영업자들입니다. 한승태 르포작가가 짧은 글이지만 자영업자들의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가늠해봅니다.
“여기가 보증금 500, 월세 20, 관리비 20이에요. 여덟평에 이 정도면 아주 좋은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뭐 하실 거라고요?”
은미가명는 업종 이야기가 나오자 잠시 긴장했다. 수공예 공방이라고 하면 다들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런 게… 돈이 돼요? 장사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닌데….”
은미는 그 뒤에 생략된 말이 뭔지 안다.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 그냥….’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은미는 장사가 만만하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 대란이 벌어졌을 때는 천마스크를 만들어서 팔았다. 당연히 모든 게 수작업이었다. 5시간만 자고 작업해도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최대가 6개였다. 그런 생활을 6개월 동안 하고 나니 마침내 주문량이 줄어들기 시작했을 때는 안도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만 해도 공방 수입이 남편보다 좋았다. 하지만 육체를 갈아 넣어야 하는 반짝 특수는 오래전에 지나갔다. 3년간 쓰던 사무실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옮기기로 한 것도 월세를 줄이기 위해서다. 원래 공방은 집 바로 앞이라 살림과 공방 모두를 책임지는 은미에게 딱 맞았다. 월세 40에 열한평짜리 공간이었다. 이번 12월이 계약 만료인데 월세가 벌써 석달치나 밀렸다. 고정비가 20만원만 줄어도 숨통이 좀 트일 것 같다.
공방이 생계의 전면에 나선 건 3년 전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한 뒤부터다. 다행히 생명은 무사했지만, 프리랜서였던 남편이 이전처럼 일하는 건 어려웠다.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은미에겐 은행 잔고도 머뭇거릴 시간도 없었다. 바로 집 근처 사무실을 계약하고 어렸을 적 키우던 개 이름을 딴 공방을 차렸다.

은미는 수공예 경력 8년차다. 이 업계에선 2년을 넘기는 공방도 많지 않다. 공방은 진입장벽이 낮다. 공예 관련 민간 자격증을 취득하고 사업자 신고만 내면 된다. 공예는 요리 공방처럼 허가가 까다롭지도 않다. 그래서 많은 여성이 쉽게 시작하고 또 많이들 금방 망한다. 은미는 뜨개질과 양말목을 주로 다룬다. 이전에는 자이언트 얀을 많이 다뤘다. 수공예는 유행하는 소재가 계속 바뀐다. 한가지 소재만 다뤄서는 공방을 이어가기가 어렵다. 1, 2년 주기로 바뀌는 유행을 따라 새로운 소재를 다루는 법을 배우고 또 자격증도 따두는 게 좋다. 은미만 해도 지금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팝아트’나 ‘아로마테라피’ 자격증까지 가지고 있다.
양말목은 새활용업사이클링이 주목을 받으며 사람들이 찾기 시작한 소재다. 공장에서 양말을 만들고 나면 발이 들어가는 부분의 끄트머리가 동그란 띠 형태로 남는다. 양말을 하나 만들면 반드시 양말목이 하나씩 나온다. 양말목은 공장에서 따로 돈을 들여 폐기하는 쓰레기인데 이걸 뜨개질하듯 엮고 이어서 컵받침이나 가방, 바구니 같은 생활용품을 만든다.
은미는 개인적으로 양말목을 가장 좋아한다. 양말목에는 실이나 다른 소재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링’을 꼬고 이어서 연결하는 특유의 손맛이 있다.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점도, 재료비가 많이 들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양말목을 둘러싼 상황을 생각하면 많이 씁쓸해진다. 초기에는 양말 공장을 찾아가서 이것 좀 가져가도 되겠냐고 묻기만 하면 됐다. 공장에선 처리 비용 안 들어서 좋다며 반가워했다. 하지만 양말목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달라졌다. 지금은 킬로당 얼마씩 돈을 내지 않으면 구할 수가 없다.
변화는 비용만이 아니다. 양말목을 시작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이 색상을 갖추는 거였다. 양말 대부분은 무채색이다. 회색 아니면 검은색이다. 밝은색 양말목은, 특히나 빨간색은 정말 구하기 힘들었다. 누가 빨간색이나 파란색 양말목을 구했다고 하면 하는 일 제쳐두고 찾아가서 조금이라도 얻어보려고 애를 써야 했다. 새활용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양말목 공예에도 관심을 가지지만 그들도 예쁜 걸 원한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예쁘지 않으면 갖고 싶어 하지도 배우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원색 양말목이 귀해지자 공장에선 양말목만 따로 찍어내기 시작했다. 몇년 전만 해도 그들이 쓰레기라고 부르던 것을 지금은 일부러 재료비를 들여 만들어 낸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원색 양말목의 90%는 양말 부산물이 아니라 그렇게 별도로 생산한 절반짜리 상품이다. 양말목의 취지에 공감해서 시작하긴 했지만 지금의 양말목 공예를 얼마나 친환경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어쩌면 친환경적인 사업이란 단어 자체가 형용 모순인지도 모르겠다.
공방 수입의 절반 이상은 출강이다. 다양한 단체에서 문화 사업 예산으로 하루나 이틀짜리 공예 교실을 연다. 지난주엔 일산의 유치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하루 수업을 하고 재료비 포함해서 40만원을 받았다. 이런 자리가 꾸준하게만 들어와도 공방 운영이 훨씬 수월하겠지만 경쟁이 치열하다. 많을 때는 한달에 대여섯건 잡히기도 하다가 없을 때는 몇달 동안 한건도 연결되지 못할 때가 있다. 사무실 월세가 밀렸던 달은 출강이 한번도 없었을 때다. 흑자냐 적자냐를 가르는 기준은 언제나 출강 횟수다. 수입의 나머지 30%는 제품 판매, 20%는 양말목 자격증 수업이다.

요즘 장사가 다 그렇지만 공방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돋보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은미는 직접 수업을 하는 시간 못지않게 많은 시간을 에스엔에스 마케팅 강의를 들으며 보낸다. ‘인스타 잘하는 법’, ‘릴스 잘하는 법’, ‘쇼츠 잘 만드는 법’, ‘알고리즘 잘 타는 법’ 등등. 유튜브에 떠돌아다니는 영상이 아니라 수십만원을 내고 업계의 선배들이 진행하는 온라인 강의를 듣는다.
이런 흐름을 타고 부쩍 늘어난 게 성공 노하우를 알려준다는 강의들이다. ‘여러분 저는 이렇게 해서 월 700씩 벌어요. 제가 알려드릴게요. 수강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지인들이 신청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따라가게 된다. 지난 강의는 6개월 할부로 카드를 긁어 수강료를 냈다. 이제 업계에서 꾸준하게 큰 수익을 내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지 가르쳐준다는 사람들인 것 같다. 회의감이 들다가도 에스엔에스 게시물에 조회 수가 적게 나오거나 구독자 수가 떨어지면 다시 이런 강의에 눈을 돌리게 된다. 집으로 돌아와 밀린 집안일을 마치고 조급하게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릴 때면 인스타가 사업의 성공을 인질로 붙들고 있는 것만 같다.
사무실을 옮긴 후에는 뜨개 비중을 늘려 보려고 한다. 요즘은 다시 뜨개질이 인기다. 카페에 있으면 다이소에서 파는 뜨개질 세트를 들고 다니는 20대 여성들을 마주칠 때도 있다. 뜨개질은 수공예 공방의 스테디셀러이자 궁극의 아날로그다. 대바늘 기법은 기계로 직조가 가능하지만 코바늘 기법은 기계로는 재현할 수가 없다. 코바늘은 반드시 사람 손으로 한땀 한땀 만들어야 한다. 공방을 하면서 한가지 놀랐던 게 완제품을 구매하는 비율보다 재료와 설명서만 들어간 디아이와이DIY 키트를 찾는 사람이 더 많았다는 점이다. 오늘날처럼 디지털이 대세인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두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한다.
자격증 수업을 받으려고 찾아오는 여성들을 만나면 복잡한 기분이 든다. 미혼인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사이의 전업주부들이다. 그중에는 공방 창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도 많다. 이유를 들어보면 대답이 판박이다. 결혼하고 쭉 집안일과 아이만 신경 쓰며 살았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더니 더는 내 손을 안 타고 점점 멀어져 간다. 집에 혼자 앉아 있으면 계속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은미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혼자 놔두고 외출해도 될 만큼 아이가 자랐을 때였다. 우연히 비누 만들기 수업을 들었다. 옆의 여자들은 도무지 갈피를 못 잡는데 은미는 모양, 색깔 모두 지시한 대로 만들었다. 강사는 처음 해본 게 맞냐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자꾸 수업 생각이 났다. ‘어? 나도 잘하는 게 있네. 나 이걸로 뭔가 할 수 있을까?’
은미는 자격증 수업을 찾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어떤 것인지 안다. 장사가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만큼 그들을 괴롭힌 생각이 무엇인지도 안다. 냉장고 위에 먼지가 쌓이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고 아이를 배달 음식으로 키우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내 삶을 너무 방치해 왔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절망하거나 우울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인생의 가능성이 모두 소진된 건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남편과 아이가 떠난 집 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뇌게 된다. ‘내가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냥 인간으로서 내가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이는 거기에 꽃꽂이로 대답하고 어떤 이는 뜨개질로 대답하고 또 어떤 이는 바싹하게 구운 쿠키로 대답한다. 가끔 이런 데를 찾는 사람이 도대체 있을까 싶은 꽃집이나 공방을 지나가게 된다. 아마 없을 거다. 그렇다고 그들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텅 빈 매장 안에 가득한 절박함을 은미는 알기 때문이다. 은미는 그저 그들에게도 또 자신에게도 ‘다음’이 남아 있길 기도할 뿐이다.
한승태 르포작가
* 한승태 르포작가: 대학을 졸업하고 꽃게잡이 배, 주유소, 양돈장 등에서 일하며 글을 썼다. ‘퀴닝’ ‘고기로 태어나서’ ‘어떤 동사의 멸종’을 썼다. 제59회 한국출판문화상교양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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