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똘이의 장례식…태어나 가장 많이 울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 사회기사 | society

그토록 사랑하던 반려견 똘이가 느닷없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가장 평온한 온기를 주던 보드라운 존재가 열여덟 개의 작은 돌이 되었다. 똘이가 떠난 지난해 9월 19일, 가장 완전했던 평범한 날들이 쩍 갈라지며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부재하니 더 선명히 보이던 행복들./사진=똘이의 가장 좋은 친구였던 남형도 기자

초인종을 눌렀을 때, 우다다다 뛰어나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고 적막할 때, 유리문 너머로 한껏 젖힌 귀와 세차게 흔들리는 꼬리가 보이지 않을 때, 반려견 똘이의 부재가 서늘하게 들이닥쳤다.

겪어보지 못한 슬픔의 무게에 압도돼 현관을 채 지나기도 전에 울음을 쏟았다. 앞이 일렁이는 채로 힘겹게 걸음을 옮겨 거실로 향했다. 거실장 한편에 놓인 자그마한 나무상자. 뚜껑 안쪽에 사진으로 담긴 똘이의 환한 웃음. 그 안에 놓인 열여덟 개의 동그란 돌. 이를 하나씩 어루만지며 말을 건넸다.

"똘이야, 형아 왔다."


만져지는 게 익숙한 온기가 아녀서, 한껏 핥아주며 온몸으로 환대하던 존재가 없어서, 도무지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밀물처럼 가슴에서 성대로, 입가에서 콧잔등으로, 코와 눈에 난 구멍으로. 휴지 쓸 새도 없이 손바닥으로 속절없이 훔쳐내었다.

똘이가 남기고 떠난 물건들.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옷과 딸랑이 등만 집안 한편에 두었다. 볼 때마다 눈물이 고여서, 늘 사진처럼 뿌옇게 보이곤 했다./사진=똘이와 가장 많이 놀아주었던 남형도 기자

2023년 9월 19일. 도대체 이리 슬플 수 있나 싶고 온 세상이 돌연 무너져버렸던 날. 다정했던 10살 똘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날의 기억이 그랬다.

2024년 9월 19일. 1년이 흐른 뒤에야 기록을 남기기 위해 똘이 사진을 하나씩 마주해봤다. 보냈다고 하면 정말 영영 보낼 것만 같아 두려웠었다. 벌써 1주기라고 아내와 얘기하고 함께 또 울었다.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적어본다.

빈자리가 너무 커 슬픈 걸로만 기억됐던 똘이와의 시절을, 슬프지만 행복했던 추억으로 바꿔보려고.

첫 만남에 다리에 올라온 똘이…큰일났다고 생각했다

2014년 가을, 처음 만난 날부터 스스럼없이 내 다리에 올라와 작은 고개를 괴던 똘이. 행복과 불안은 붙어 있는 양면 같아서, 정이 들수록 언젠가 끝날 시간을 더 선명히 의식하게 되었다./사진=똘이의 가장 좋은 베개였던 남형도 기자

똘이를 처음 만난 건 2014년 가을이었다. 당시 여자친구현 아내가 처음 키우기 시작했던 하얀 강아지. 결혼을 약속한 뒤 방문한 집에서 처음 만난 녀석이, 스스럼없이 내 다리에 올라왔다. 어째 이러냐고 다들 신기해할 때 속으로 큰일났다고 생각했다. 정이 또 드는 게 두려워서였다.

첫 반려견인 아롱이가 생각나서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함께한 가족이었다. 아롱이의 시간은 나보다 빠르게 흘렀다. 언젠가부터 걸음이 느려졌고 웅크리고 잠자는 날들이 많아졌다. 17살이 된 어느 날. 아롱이는 밤잠을 못 이루고 낑낑대며 빙글빙글 제자릴 돌기 시작했다. 식구들이 번갈아 안으며 졸며 달래며 애써 재워야 했다. 품 안에서 겨우 잠이 들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모란시장에서 데려와 17년을 살고 무지개다리를 건넌 첫 반려견 아롱이. 떠난지 10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떠올리면 속절없이 울고 만다. 짐작컨대 이는 극복하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 슬프지만 행복한 추억으로 남는 것뿐이라고./사진=철이 없어 아롱이에게 자주 깨물렸지만 가장 사랑했던 오빠 남형도 기자

아롱이가 세상에서 보낸 마지막 날이 하필 언론사 합숙 면접 날이었다. 받은 면접비로 꽃을 샀다. 돌아오던 지하철에서 미친듯이 계속 울었다. 가끔 동네 산책을 귀찮아했던 것, 어릴 때 철없이 굴었던 것, 그랬던 날들이 한없이 후회되고 싫었다. 미안함이 한처럼 남았다.

돌아온 집안에선 배변할 때 신문지가 부스럭거리던 헛소리를 듣고. 우리 가족은 아롱이 때문에 거의 못 갔었던 여행을 다니며 어떻게든 시간이 흐르길 기도했다. 상실의 힘듦은 상상 이상으로 너무 컸고, 오래 갔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눈물이 터져 나오게 했다. 굳게 다짐했었다. 다신 반려견을 가족으로 맞지 않겠다고.

똘이는 형아를 제일 좋아해. 왜 이리 좋아할까. 늘 그런 질문이 오가곤 했다. 몸 어딘가에 붙어 있는 걸 참 좋아했었다./사진=그 시간을 오래 누리고 싶어 늘 정지해 있었던 남형도 기자

그런데 똘이가 내 다리에 올라와 연緣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좋으면서도 큰일났다고 생각했고, 이 또한 어쩔 수 없단 걸 받아들였다.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작고 하얀 강아지가 편안해했다.

가장 행복한 날들이라 불안했었다

똘이야, 사진 찍는데 앞에 봐야지. 이리 찍은 사진이 새털처럼 많이 쌓였는데./사진=얼굴 크기가 몇 배 차이나도 그저 좋은 남형도 기자

아내와 결혼한 뒤 똘이는 처가에서 살았다. 같은 동네라 자주 만났다. 함께 지내는 거나 다름없을 만큼. 특히 장모님, 장인어른이 여행 가시면 똘이를 우리 집에 맡겼다. 어디 나가지도 않고, 똘이와 집에서 함께 자고 놀고 먹고. 짙고도 깊은 행복의 시간을 만끽했다.
그저 가장 좋아하는 딸랑이 하나면 충분했으니까. 작은 입에 쏙 맞는 크기. 던져주면 물어와 떨어트리고, 던져주는 척하며 재밌게 해주다 던지고, 그러면 또 물어와 다시 던지라고 떨어트리고. 헥헥거리며 웃는 걸 보며 함께 웃었다. 아롱이와 함께한 시간 덕분에, 똘이와도 즐겁게 몸으로 놀아주는 법을 잘 알았다. 그래서인지 날 가장 좋아했다.
강아지일 땐 배 위에 올라오는 걸 좋아했다. 그럼 작고 보드라운 몸을 천천히 어루만져주었다. 안온해져 그대로 낮잠을 잘 때도 많았다. 잠에서 깨면 똘이는 내 몸 어딘가에 가만히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콩콩거리는 작은 심장박동이 전해질 때도 있었다. 부스럭거려 형아가 깼단 걸 확인하면, 어서 놀자고 딸랑이를 물어오곤 했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존재가 또 있을지.

80세 노인 체험을 하느라 분장했음에도 한 눈에 알아보고, 한 걸음에 달려와 세차게 반기던 똘이. 모든 고생이 눈 녹듯 사라졌었다./사진=사실은 알아봐주길 내심 바랐던 남형도 기자

80세 노인 체험을 하느라 머리를 허옇게, 얼굴은 주름지게 바꾸고 온몸에 압박 장비를 찼던 날. 지하철에서 젊은 승객에게 자릴 양보받을 만큼 감쪽같았음에도, 한눈에 형인 걸 알아보고 꼬릴 흔들며 달려왔던 존재. 종일 글이 너무 안 써져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무쓸모한 하루를 자책하며 돌아왔을 때, 어떤 나여도 좋다며 반겨주던 똘이.

평범한 여름 저녁의 안온한 낮잠. 삶의 행복은 이런 게 전부가 아닐까 싶다고. 빈자릴 느끼니 불필요한 걸 내려놓고, 곁을 더 살피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사진=몇 번이고 그때로 돌아가고픈 남형도 기자

행복할수록 쉼 없이 의식했었다. 아내와 늘 그리 대화를 나눴다. 한여름. 창밖은 나뭇잎 물결로 푸르고 바람이 언뜻 살랑거려 구름이 천천히 흘러갈 때, 그 배경으로 똘이가 딸랑이를 드리블하며 천진난만하게 놀 때. 고요하고 진한 행복의 순간. 그걸 사진으로 남기며 함께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이 장면 있잖아. 이게 우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 같아. 눈 감을 때도 생각날 것 같은."

가을 하늘 배경으로 한강 공원에서 한 컷. 네 웃음이 항상 정말 좋았어./사진=남형도 기자

애정하는 문지안 작가 에세이 무탈한 오늘21세기 북스의 문장도 떠올랐다.

아무 일 없다는 듯 곁에 머물러 있는 오늘이 언젠가 가슴 아리도록 그리워할 일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햇살이 길게 들어오는 날에, 품에 안긴 똘이와. 이런 게 삶의 마지막에서 떠올리는 장면이면 좋겠단 생각을 많이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전화 한 통에 돌연 세상이 무너져내리고

비슷한 자세로 나란히 누워 있는 똘이와 형아. 얼굴은 별수없이 모자이크했다./사진=독자들에 대한 예의를 지킬 줄 아는 남형도 기자

아롱이를 보내봤었기에 잘 알았다. 언젠가 똘이로 인해 많이 울 거란 걸. 죽음을 늘 떠올렸다. 기사 마감을 하느라 노트북 앞에 앉아 있을 때, 놀아달라고 딸랑이를 가져와 예민해질 때도, 정신을 다잡고 던져주며 놀았다. 귀찮아하지 말라고. 지금이 얼마나 좋은 날들인지 잊지 말라고 강박적으로 되뇌었다.

상추를 물고 있는 똘이. 먹지 않고 물고 있는 건, 이딴 건 맛없으니 맛있는 걸 내놓으란 의미다./사진=잘 알고 있지만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상추를 자주 줬었던 남형도 기자

꿈에도 몰랐다. 나이가 들어 걸음이 느려지고, 잠이 많아지고, 그러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것만 생각했지. 맑은 하늘에 퍼붓는 소나기처럼 돌연 죽음이 찾아올 줄은.

지난해 9월 19일 오전이었다. 취재한 걸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받자마자 평범히 누려왔던 행복이 산산조각이 났다.

"오빠, 큰일났어. 여기 병원인데 똘이가 죽을 수도 있대. 빨리 와, 빨리."

우린 참 비슷한 모습으로 많이 누워 있었다. 염치없이 행복했다. 이래도 될까 늘 불안했을만큼./사진=피곤한 모습이 많은 것 같아 새삼 미안한 남형도 기자

어, 어, 이게 뭐지. 무슨 말이지. 뭘 들은 거지. 꿈인가. 현실감 없이 모래 위를 걷는 기분으로, 그러나 다급하게 회사 밖을 뛰쳐나갔다. 노트북이고 가방이고 다 자리에 내던진 채.

택시를 타려 했다. 앱이 업데이트 한다고 시간을 썼다. 아, 제발 좀, 미치겠네. 육성으로 안 좋은 말들이 튀어나왔다. 빨리 가야 해. 겨우 잡아탔는데 어쩐 일인지 차가 한참 막혔다. 마음은 시속 1000킬로로 내달리는데, 택시는 기어갔다. 죽을 것 같았다. 기사님, 죄송한데 빨리 좀 가주세요. 제발요. 제발.

기자의 이두근 위에서 쌔근쌔근 잠든 똘이. 보드랍고 포근한 느낌이 좋아서, 팔에 쥐가 날 정도로 멈춰 있었다. /사진=깨우지 않고 잠들게하는데 성공한 남형도 기자

죽지마 똘이야, 죽으면 안 돼. 괜찮을 거야. 괜찮아. 넘어갈 거야. 지나갈 거야. 그러면 정말 잘해줄 거야. 진짜 더 잘해줄테니까. 내 수명을 나눠줘도 좋아. 제발 살아만 줘. 그렇게만 해달라고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니 기도했다. 평소 소원했던 신에게 애걸하며 빌었다.

일할 때도 늘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 더 오래 바라봐주지 못한 게 후회된다. 주어진 시간은 같았는데, 형이 너무 바빠서 미안했어./사진=노트북을 보는 시간이 많았던 남형도 기자

다시 전화가 왔다. 아내였다. 똘이 괜찮아졌대, 아, 다행이다, 그런 대화를 기대했으나. 아내의 울음소리가 수화기를 가득 메웠다. 다음 말을 듣기도 전에 내 온전했던 세상이 노랗게 무너졌다.

"똘이 죽었대. 똘이 갔대. 어떡해, 불쌍해서 어떡해…."

똘이를 품에 안고 통곡했다…처음 내는 울음소리로

잠을 자듯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똘이의 시간이 10살에서 멈췄다. 가장 좋아하던 딸랑이를 앞에 놓아주었다. 슬프다란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슬픔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택시에서 내려 병원으로 달려갔다. 신호등 빨간불이 이리 긴 줄 몰랐다.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내달렸고 병원 문을 벌컥 열었다. 안쪽엔 눈도 채 못 감은 똘이가 가지런히 잠자듯 누워 있었다. 이리 갑작스레 떠날 줄 몰랐다. 안녕이란 말도 못 했는데. 너무 멀리 있었지, 늦게 와서 미안해.

예기치 못한 사고였다. 피부병 때문에 병원에 다녀왔단다. 고생했다고 간식을 줬는데, 똘이가 구석으로 가져가 허겁지겁 급히 먹다 목에 걸려 질식했다고.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한 뒤 다급히 동네 병원에 왔지만 이미 늦었다고 했다.

장모님이 "더 빨리 알아채지 못해 미안하다"고 오열하며 자책했다. 아내도 눈물이 더 나오지 않을 만큼 울었다.

그러게, 급하게 먹지 말라고, 천천히 좀 먹으라고 그리 말했었잖아. 똘이에게 하고픈 말은 꾸역꾸역 다 삼키고, 무릎을 꿇고, 산짐승처럼 길고도 길게 소리 내어 한참을 울었다. 황망하고 애달프고 아파서. 함께하려 했던 날들을 다 누리지 못한 게 속상하고 분하고 억울해서.

나무로 만든 관 안에, 수의를 입고 곱게 누워 있는 똘이. 실은 하염없이 붙잡고 싶었다./사진=태어나 가장 많이 운 남형도 기자

아내는 내가 그런 울음 소릴 내는 건 처음 들어봤다고 했다. 조경란 작가 소설 식빵 굽는 시간문학동네의 문장이 떠올라 슬펐단다. 주인공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를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아버지의 방에 불이 꺼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다시 계단을 내려와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는 한 컵 가득 활명수를 들이마셨다. 그리고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으면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윽고 나는 내 몸에 들러붙어 있는 어둠을 툭툭 털어내고는 방으로 올라갔다. 어디선가 거북이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리고 있었다.

장례식장서 한 줌 가루로…동네 고양이가 다가와 위로했다

물 마시는 모습을 장례식장에서 보게될 줄은 몰랐다. 마지막으로 주어진 똘이와의 시간. 몇 번이고 쓰다듬고 만지고 부르고 기도하고도 성에 차지 않았다. 이젠 끝이구나 생각하니까./사진=남형도 기자

똘이를 집에 데리고 왔다. 타닥타닥 경쾌하게 자주 다니던 집안 곳곳을 보여주었다. 거실 카펫에 내려놓고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맘 같아선 하염없이 붙잡고 곁에 두고 바라보고 싶었다. 더 울음이 나오는 게 의아할 정도로 울고 쏟아내었다.

집을 떠날 시간이었다. 아내가 똘이를 품에 안았다. 알아본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모님과 아내와 똘이를 차 뒷자리에 태우고 내가 운전했다. 눈가에 폭우가 멈추질 않아 소매로 계속 훔쳤다. 도착 예정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장례식장 직원이 똘이와 마지막으로 함께할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작은 방 모니터 화면에 해맑은 똘이 사진이 번갈아 가며 떴다. 너무 천진난만해 슬펐다. 잠시 뒤 똘이가 나무로 짠 관에 담겨 왔다. 하얀 수의를 입고 그 위에 꽃잎 몇 개가 뿌려졌다. 화장하기 전, 똘이와 끝인사를 나눴다.

열여덟 개의 돌이된 똘이와 애정하던 사진과 마지막으로 찍은 두 발바닥./사진=사진설명 달며 또 우는 남형도 기자

우리 가족으로 와줘서 정말 행복했어. 행운이었어. 아무런 바람 없이 부지런히 사랑해줘서 고마워. 함께했던 시간을 영영 잊지 못할 거야. 좋은 곳에 가서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고 있어. 금방 갈게. 그땐 헤어지지 말고 딸랑이 던지며 평범히 같이 놀자. 넌 언제나 가장 가깝고 좋은 친구였어. 자주 말해 지겹겠지만 또 말할게. 사랑해, 똘이야.

반려동물 장례식장에서 만난 동네 고양이. 곁에 가만히 기대어주어서 고마웠다./사진=남형도 기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똘이가 한 줌 가루가 되어 나왔다. 유골을 어떡할 거냐 묻기에, 스톤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사랑해 마지않던 똘이는 그리 열여덟 개의 작고 동그란 돌이 되었다.

감당하기 힘든 상실…저녁마다 아내와 걷고 울었다

가장 좋아하던 목화솜 쿠션 위에, 가장 좋아하던 딸랑이를 올려두고. 그리고 열여덟 개 돌이 된 똘이를 올려두었다./사진=남형도 기자

틈틈이 촘촘히 따뜻하게. 쉴 새 없이 메우던 작은 존재의 빈자리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똘이가 늘 물고 다니던 딸랑이, 입던 옷, 앉던 쿠션, 여자친구라 부르던 강아지 인형. 주인을 잃은 채 남은 흔적들을 보며 너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기 힘들어 미칠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먹는 것조차 싫었다. 데스크에 얘기해 며칠 연차를 내었다. 도저히 일할 정신이 안 될 것 같다고.

상실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시간이 흘러도 썰물처럼 빠져나가지 않고, 또 다른 밀물이 몰려왔다. 깊이를 헤아리기 힘든 해구에 끝모르게 잠기듯, 심연에서 심연으로. 지독한 우울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실은 슬픔에 잠겨 있는 게 더 편했다.

매일 저녁이면 바깥에 나갔다. 아내와 대화하며 하염없이 걸었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이보다 행복할 순 없을 것 같다. /사진=똘이를 어루만지는 남형도 기자

똘이가 형아 화장실 가면 앞에서 기다렸잖아, 빨리 나오라고. 변도 맘 편히 못 봤지. 기다릴 땐 꼭 내 옷 위에 앉아 있었어. 안 자려고 딸랑이 던지며 시위하던 거 생각나. 그땐 자라고 타박했는데 그리 좋은 거였어. 똘이가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그치.

걷다가 울고, 울며 또 걸었다. 그럼에도 매일 더 슬퍼져서, 대체 이 슬픔이 끝나긴 하는 걸까 두려워지기도 했다.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수긍하다가, 왜 똘이를 이리 빨리 데려갔느냐고 신을 원망하다가. 억울하고 분해서 분노를 쏟아내기도 했다. 펫로스와 관련된 책 몇 권을 읽다가, 어떤 문장도 위로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서로의 곁에 참 부지런히도 붙어 있으며 밀도 있는 행복을 누렸었고./사진=이 모습을 가장 좋아하는 남형도 기자 아내

그 무렵 유일하게 심경을 대변해준 글은, 고 박완서 작가 에세이 한 말씀만 하소서세계사였다 이윤주 작가 에세이,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위즈덤하우스 책에서 이를 처음 알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아들을 잃고 피를 토하듯 남긴 글이었다. 어둠이 그를 집어삼킬 무렵, 88올림픽이 열려 대한민국이 환호하자 이런 문장을 썼다.

아아, 내가 만일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 못하게 하련만. 미친X 같은 생각을 열정적으로 해본다. 만약 내 수만 수억의 기억의 가닥 중 아들을 기억하는 가닥을 찾아내어 끊어버리는 수술이 가능하다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련만. 그러나 곧 아들의 기억이 지워진 내 존재의 무의미성에 진저리를 친다.

"서늘함을 내포한 평정 상태에 아프게 적응해 갈 뿐"

더는 만지고 냄새 맡고 안고 느낄 수 없음에 사계절이 서늘해졌다. /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반년을 꼬박 저녁 산책을 하며 슬픔을 쏟고, 벼랑 끝에서 아내와 서로의 난간이 되어 주고서윤후 시인의 말 참조, 광화문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밝은 노랠 듣다가도 뜬금없이 눈물을 흘렸다.

독자들에게 똘이를 잃었음을 말하지 못했다. 얘기하는 순간 정말 보낼 것 같아 두려워서였다.

그러느라 더 힘든 일도 있었다. 똘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단 걸 몰랐던 독자가, 똘이 선물이라며 귀여운 장난감을 보냈을 때. 살아 있었다면 좋아했을 똘이 표정이 떠올라 사무치게 그리워 꺽꺽대며 울었다. 그런 사정은 삼키고 고맙다며 화답하고, 주인 없는 장난감을 유기견 보호소에 기부했다.

평온히 잠들었기를, 그리고 곧 다시 만나서 뛰어다니며 놀기를./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는 사이 1년이 훌쩍 흘렀다. 똘이 없는 가을과 겨울, 봄과 여름을 돌아 다시 가을이 왔단 게 믿기지 않았다.

이 글을 쓰며 수도 없이 우느라 자주 문장이 멈춘단 걸 봤을 때, 오랜만에 본 사진과 영상을 마주하며 극도로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을 때. 여전히 괜찮지 않음을 깨달았다. 애도는 진행 중이다. 문지안 작가 에세이 무탈한 오늘21세기북스의 문장을 빌려 마음을 표현해본다.

비어져 나오는 감정을 홀로 안고 잠드는 밤. 떠나간 존재의 빈자리를 손으로 쓸어보는 새벽. 존재를 보내었으나 보내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겨울. 삶이 몇 도쯤 서늘해졌음을 깨닫는 봄. 긴 시간을 관통하는 개인의 통증들. 괜찮지 않다거나 괜찮아진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저 서늘함을 내포한 평정 상태에 천천히, 아프게 적응해 갈 뿐이다.

"그냥 개, 고양이 한 마리"란 인식 때문에

헤헤, 하고 웃는 좋아하는 똘이 사진./사진=그런 똘이가 늘 사랑스러웠던 남형도 기자

똘이를 잃은 과정을 되새기며, 어느 기사를 쓸 때보다 많이 울었다. 그럼에도 상세히 남기고 싶었다. 반려동물과 함께한 삶이 어떤 의미인지 선명하게 보여주고 싶어서. 그러니 상실의 힘듦 역시 지극히 당연하다고 알리고 싶어서였다.

공감 능력이 거친 누군가 혹여나 "사람도 아닌데 뭘 슬퍼하느냐"고 함부로 이야기할까 싶기도 해서. 그런 시선에 슬픈 감정을 억누르기만 하거나, 빠르게 극복하려 애쓸까 봐. 그러다 외려 더 힘들까 걱정이 되었다.

논픽션 작가인 E.B.바텔스는 저서 아는 동물의 죽음위즈덤하우스에서 이리 남겼다.

반려동물 주인들에겐 공통적으로 엄청난 슬픔과 고통 속에서 "그저 고양이 한 마리", "그냥 개 한 마리"라고 일축하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속상했던 기억이 있었다. 별것 아니니 어서 극복하라는 뜻의 말. 심지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조차 타인이 동물을 잃고 크게 슬퍼하면 그것이 도를 넘었다고 섣불리 판단하곤 한다. 앞서 나는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은 "권리를 박탈당한 슬픔"이라고 했다.

팔을 향해 기지개를 켜던 똘이. /사진=얼굴은 독자에 대한 예의상 가린 남형도 기자

반려동물과 관계 맺는 방식을 보면 이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단 분석도 있었다. 조지훈 펫로스 심리상담센터 안녕 원장은 저서 어서오세요, 펫로스 상담실입니다라곰에서 이같이 설명했다.

반려인과 반려동물의 관계는 부모와 자녀 관계와 매우 유사합니다. 그중에서도, 엄밀하게 말하자면 부모-영유아의 관계와 유사하죠. 반려동물들은 성체가 되어서도 우리의 보살핌을 요구하니까요. 중략 이렇게 짧게는 10여 년, 길게는 20여 년을 자녀처럼, 그것도 어린아이를 돌보듯 애지중지 키워오다 사별을 경험했을 때, 그 사별이 주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받아들이고 슬퍼하고 적응하고…"애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화장실에 쉬야해놓고 얼른 닦으라고 바라보는 똘이. 털 한 가닥이 뽀인트./사진=볼 일 보게 자리 좀 비켜달라고 바라보는 남형도 기자

조지훈 원장은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뒤 경험하는 심리적 문제가 펫로스 증후군이라고 했다. 우울감, 외로움, 자기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나 후회, 사별한 반려동물을 다시 만나고 싶단 갈망, 반려동물을 떠올릴만한 장소나 상황 회피, 주의 집중 곤란 같은 증상들이 두 가지 이상 함께 나타나는 거란다.
이러한 상실감은 너무나도 당연한 거라고 했다. 심용희 수의사는 저서 펫로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크루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낌없이 사랑을 주던 대상의 갑작스러운 부재가 안겨준 그리움이고 안타까움입니다. 심한 공허함과 상실감을 느끼더라도 그것은 당신이 심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떠난 그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그만큼 지극하고, 진실 되었다는 반증입니다. 우리는 같이 보내지 못한 시간과 좀 더 잘해주지 못한 일을 떠올리며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안타까움은 관심과 사랑을 충분히 주지 못해서 생기는 후회가 아닙니다. 더 많은 것을 해주고 보여주고 싶었던 지극한 사랑의 투영입니다.

세상을 떠났어도 몸이 사라졌어도 마음엔 언제까지나 남아 있으니까./사진=물끄러미 바라보는 게 좋았던 남형도 기자

그러면서 심 수의사는 같은 저서에서, 죽음을 맞는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의 감정이 5단계로 진행된다고 했다.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권위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가 말한 게 이렇단다. 1단계는 부정과 고립, 2단계는 분노, 3단계는 협상, 4단계는 우울, 5단계는 수용으로 나아간다고.

죽은 게 아니라며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스스로나 누군가에게 분노하기도 하고, 편안하게라도 보내달라며 협상하다가, 깊은 절망과 우울에 빠지기도 하고. 그러다 비로소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는 거란다.

조지훈 원장은 저서 어서오세요, 펫로스 상담실입니다라곰에서 "펫로스 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려동물을 애도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사랑하고 잃는 게 아예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마주보던 시간도 참 행복했었다. 놀아달라고 보채던 똘이./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그러면서 사별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반려인에게 가장 먼저 권하는 게 글쓰기라고 했다.

편지나 수필, 시 등 어떤 형식이라도 좋습니다. 다만, 글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아야 합니다. 나의 OOO는 세상을 떠났다. 우리 OOO는 무지개 다리를 건너갔다. 힘들겠지만 첫 문장을 적었다면, 이제 사별에 대한 내용과 나의 생각 그리고 감정을 정리해 덧붙여 써봅니다.

청순하게 털을 깎은 똘이. 반려견 표정은 자세히 보면 다 다른데, 보호자만이 알 수 있다. 이건 뭔가 바라는 표정./사진=바라는 걸 바로 알아채고 해주는 게 좋았던 남형도 기자

심용희 수의사는 저서 펫로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에서, 감정을 다른 이들과 나누라고 했다.

감정을 가슴속에만 담아 두지는 마세요. 감정 표현은 약점을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감정에 집중하고, 존재와 상실을 겪어 내기 위한 과정을 자연스럽게 따라가세요. 당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소통하세요. 위로와 이해, 추억의 공감을 거치며 당신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백 가지 방법을 동원해봐도 똘이를 잃을 게 너무 슬퍼서.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애정을 나눌 일도 없었다면, 그리 원초적인 부정의 단계까지 이르렀을 때 늪에서 끌어 올려준 문장 또한 심용희 수의사의 책에 있었다.

다만, 당신이 슬픔의 바다 깊숙이 침잠할 때 만남과 그 모든 교감, 사랑의 순간이 지금 슬퍼하기 위해서만 지나온 시간이 아니라는 것만 기억해주세요. 행복하고 사랑스러웠던 추억들을 감정의 파도로 쓸어 다듬어 주세요. 다듬고 다듬다보면 그 모든 순간들이 슬픔의 바닥에서 아름다운 보석이 되어 빛나게 될 것입니다.

E.B.바텔스 작가의 책 아는 동물의 죽음에 적힌 문장 또한 큰 힘이 되었다.

사랑하고 잃는 것이 아예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영국 시인, 엘프리드 테니슨 경

아내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똘이 사진 중 하나. 하회탈처럼 환히 웃는 모습./사진=15세 관람가라 똘이는 못 본다고 얘기하던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언젠가 똘이를 다시 만나면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약속하듯 편지를 남겨본다.

똘이야, 너를 볼 때마다 늘 궁금한 게 있었어.

가끔은 너도 귀찮을 수도 있잖아. 오늘따라 유독 몸이 무겁다거나, 가족들 인기척에 잠을 못 잤다거나, 아님 날이 흐려서 기분이 별로라거나.

그래서 초인종이 울려도 자는 척하거나, 이유 없이 괜스레 짜증을 내거나, 혼자 있고 싶어 집에 웅크리거나, 그럴 수 있잖아. 나도 그러니까.

그런데 왜 넌 한결같이 이리도 다정했을까. 따순 온기를 한가득 머금고, 귀를 젖혀 웃으며 반겨줬을까. 맨날 보는 얼굴인데, 왜 그리 늘 빤히 바라봤을까. 마치 처음 만난 날처럼 말이야.

너무 슬프지만 너무 행복했으니까 괜찮아. 그때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또 너와 함께할 거고, 다시 슬퍼할 걸 알아도 더 많이 바라보고 사랑할 거라고./사진=남형도 기자

그런 게 참 궁금하고, 고맙고 또 미안했어. 시간을 붙잡아 몇 번이고 되돌아가도 네가 부지런히 담는 내 모습이, 나보단 여전히 더 많을 것 같아서.

널 다시 만나면 꼭 너보다 더 많이 바라볼 거야. 네가 날 한 번 보면, 두 번 볼 거고, 두 번 보면 세 번 볼 거야. 지겹다고 할 때까지 부지런히 보고 또 안아주고 놀아주려고 해. 밀린 시간만큼 말이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부디 잘 지내야 해.

안녕, 나의 가장 좋은 친구.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지만 만사 제치고 반가워하는 너의 걸음은 변한 적이 없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달려오고 밥을 먹다가도 달려오는 너의 걸음은 일관성 있는 호의의 몸짓. 13년 동안 나를 줄곧 따라다니던 걸음은 몸을 일으키지 못할 때가 되어서야 멈추었다.문지안 작가, 무탈한 오늘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