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와 엄마가 한 거, 저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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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를 보고... 가장 묘한 사랑의 관계, 엄마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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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기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효리 : "나는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있으면 지금도 약간 긴장이 계속되는 거 같아. 무슨 일이 벌어질까 봐." 효리 엄마 : "난 그런 표현을 잘 못해요 가식적으로. 카톡 해도 응 한 마디면 끝이야!" 서로의 표현 방식이 못내 서운했던 모녀가 서운한 마음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그린, 내겐 다큐 예능 같았던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의 한 장면이다. 투닥투닥 거리면서도 서로의 애정을 구하는 일반적인 모녀의 모습에 부스스 웃음이 났다. 화면 속 엄마의 모습이 고집 세다고 느껴질 때면, 아직 딸의 역할만 경험해 본 나로서는 왜 저렇게 표현하지? 왜 딸의 의견을 존중해 주지 않지? 싶다가도 딸의 정제되지 않은 화가 날카롭게 입 밖으로 내뱉어질 때면 도리어 내가 움찔 하면서 두 사람 눈치를 볼 때도 있었다. 묘한 우리 사이 나는 모녀 관계를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묘한 사랑의 관계라고 정의하곤 한다. 엄마 없이는 못 사는데, 엄마랑은 같이 못 살겠다고 많은 딸들이 증언하지 않던가. 나는 같이 사는 건 괜찮지만, 가끔 남동생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이 나를 향한 것과는 달라 서운할 때가 있다. 차별은 아니고 그야말로 차이가 있는 시선이다. 남동생에겐 애틋함, 뿌듯함 같은 걸 느낀다면 나에겐 든든함, 안도감을 느끼는 것 같달까.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엄마 앞에서는 아기이고 싶나 보다. 우리 엄마는 표현에 인색한 사람도 아니었건만 가끔 나를 너무 독립적으로 키우는 것 같아 서운할 때가 있었다. 또 엄마 아빠가 싸울 때 그 사이에서 중재하는 나를 보고 있으면 어른다운 어른, 비빌만한 언덕이 없는 것 같은 상실감에 혼자 우울해질 때도 있었고. 엄마를 너무 사랑하는데, 사랑해서 아픈 묘한 관계가 비단 우리만 겪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이번 방송을 통해 느꼈다. 그리고 일상에서 마주하지 못했던 서로의 속마음을 내보일 때 좀 더 성숙하고 아름다운 관계가 된다는 사실도. 이효리씨와 그의 어머니가 보여준 것처럼 우리 모녀를 위해 내 속마음을 용감하게 열어 보려 한다. 우리의 묘한 관계도 속마음이라는 사랑의 묘약을 통해 한층 깊어지길 바라면서. 사랑하는 나의 엄마에게
엄마, 안녕. 나는 엄마랑 함께하는 모든 걸 좋아해. 지난 가을에 함께 책방에 가자고 이야기한 것도 언제든 엄마와 밖에서 데이트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었어. 어렸을 때 말이야, 짝꿍이 새로 산 필통과 캐릭터 샤프, 지우개를 자랑하는 걸 들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말이 하나 있었어. "이거 우리 엄마가 골라준 거야." 엄마가 유독 바쁘거나, 우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은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그 말이 제일 부럽고 기억에 남더라고. 그냥 나는 엄마랑 한다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기질을 타고난 아이였던 것 같아. 책방에서 책을 같이 읽으려면 우선 같이 집을 나서고 같이 지하철을 타야 했지. 그날따라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이 어찌나 멀던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가는 길목에 있는 공원에서는 축제를 하고 있었고 엄마가 그곳을 지나칠 리가. 엄마를 데리고 가니까 나 혼자 가는 것보다 몇 십분은 더 걸렸던 것 같아. 그래도 좋았어. 엄마가 그토록 활기찬 사람이었는지, 풍부한 표정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알게 되었거든. 어차피 같은 곳으로 가야 하니까 그걸 기다리는 일도 참을 수 있었어. 한편으론 기다린다는 말이 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더라. 내가 나한테 기다린다는 말을 쓰지는 않잖아. 그러니까, 엄마와 함께 있으면 나와 완전히 다른 타인을 나라고 느끼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아. 그 기분이 싫지 않아서 엄마와 함께하는 일이 좋아. 좋아하는 장소도, 취미도 모두 다른데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잘 지낼 수 있을까. 80%는 나의 섬김과 봉사 덕분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9920%는 엄마의 사랑과 기도 덕분이 아닐까. 내가 시험에 떨어지고 한창 우울했을 때 있잖아, 밤만 되면 침대 위에서 그냥 주륵주륵 눈물을 흘리던 때. 그날도 코에서는 축축한 냄새가 나고 마음은 점점 새까매져서 이미 잠든 엄마의 고른 숨소리조차 원망스러운 날이었는데, 그 원망이 날 더 진창으로 끌어들이려던 순간 엄마가 해 준 말이 불쑥 떠오른 거야. "옛날에. 너 대학 발표날. 다 떨어지고 추가 합격 기다려야 한다고 하는데... 밤에 돌아누운 네 등이 너무 안쓰러워 보이는 거야. 그때 생각했어. 네가 뭘 하든, 아니 뭘 하지 않더라도 그냥 너 자체로 엄만 널 응원해야겠다고. 이 시험도 똑같아. 엄만 그냥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난 엄마랑 걸어다닐 때 행복하거든. 그냥 함께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감사하거든. 아, 그럼 나는 이미 꽤 괜찮은 삶을 살아내고 있구나. 그저 살아내는 것도 아름다운 삶일 수 있구나 싶었어. 사실 올해 시험에 합격할 거라고 생각했다? 일필휘지로 정말 잘 쓰고 나와서! 합격해서 엄마 호강시켜주고 인생의 동반자 LG 트윈스는 우승하고, 최고의 해를 보내고 싶었어. 근데 그게 망해버렸지 뭐야. 늪으로 쑤욱, 빠져버리는 건 순간이었어.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조급하다. 고 생각했었는데. 왠지 다시 용기가 솟았어. 엄마가 있음으로, 내가 그 말을 기억하고 있음으로, 단지 그걸로. 출근길 계단을 오르내릴 때 앞사람의 신발이 보여. 왼쪽 밑창만 닳은 신발, 안쪽 밑창이 닳은 신발, 뒤꿈치 부분이 심하게 구겨진 신발. 신발만 보고도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의 걸음걸이와 습관을 알 것 같더라고. 신기하지, 신발이 담고 있는 게. 그 사람이 어디에 다녀 왔는지, 어떤 화려한 곳에서 어떤 비싼 음식을 먹었는지는 남아있지 않고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 움직인 시간만이 담겨 있을 뿐인데. 시험을 통과해서 합격의 문을 활짝 열고 꿈꾸던 세계에 도착했다면 좋았겠지. 그렇지만 이젠 더이상 그 결과에 집착하지 않아. 그곳에 도착했건 도착하지 않았건 내 삶에는 그 길을 걷던 습관과 태도가 남아 있을 테니까. 큰 명성을 얻지 못해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지 못해도 기죽지 않으려고 해. 아, 물론 얻을 기회가 찾아온다면 야무지게 낚아챌 거야. 그렇지만, 그러하지 않더라도. 고스란히 흔적처럼 남을 것에 더 신경 쓰며 살게. 엄마의 말이, 엄마의 존재가 그랬듯이.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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