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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의 덫] ① "그냥 살고만 있어요"…한순간 무너진 일상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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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06회 작성일 24-07-1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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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꿈 깨진 신혼부부 "투잡 뛰며 눈 뜨는 순간부터 자기 전까지 일만"
피해 복구 늦어지며 파산 내몰려…충격에 사회와 멀어지는 피해자들

[전세의 덫] ① quot;그냥 살고만 있어요quot;…한순간 무너진 일상의 행복

[※ 편집자 주 = 지난해 대전에서 전세사기 충격을 견디지 못한 피해자가 세상을 등진 지 1년이 지났지만, 전세사기 범죄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최근 2년간 대전 지역 전세사기 피해액은 2천억원경찰 수사기준이 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주 피해 층인 사회초년생들은 피해 복구가 쉽지 않은 탓에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경각심을 일깨우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전세사기의 피해 규모와 수법, 제도의 허점 등을 짚어보는 4편의 기획기사를 송고합니다.]

대전=연합뉴스 강수환 기자 = "대리기산데요, 6분 뒤에 식당 앞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지난 8일 오후 9시, 휴대전화 속 대리운전 앱 출근 버튼을 누르면서 홍성민28씨는 두 번째 일터로 향했다.

이날 첫 콜을 잡은 성민씨를 손님이 기다리는 목적지까지 태워주는 일은 어머니가 맡았다. 3개월 전 대리운전 일을 시작하면서 어머니와 동생이 성민씨의 투잡을 돕고 있다.

평범한 회사원이자 세 살배기 딸을 키우는 성민씨 부부는 지난해 전세사기를 당했다.

모아둔 돈과 부모님 도움, 대출금을 더해 만든 보증금 1억8천만원으로 결혼 2년 만에 대전 서구 도안동에 신혼집을 전세로 얻었다.

계약 당시 부동산 중개사로부터 두 번째 세입자라는 안내를 듣고 문제가 생기더라도 보증금을 회수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성민씨는 실제 총 6가구 중 4순위 세입자였다.

알고 보니 집주인이 대표로 있는 법인에서 일하는 중개사가 거짓말을 했고, 성민씨는 그렇게 전세사기의 덫에 걸렸다.

결국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보증금을 한 푼도 건지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오는 11월이면 성민씨가 살던 전셋집이 경매로 매각된다.

대출금을 갚고 새로운 집을 구하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려면 투잡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출산 후 육아휴직을 했던 아내도 딸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서둘러 복직했다.

1년 전만 해도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던 성민씨 가족의 행복은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본업을 마치고 오후 9시부터 시작하는 대리운전 일은 다음 날 새벽 2∼3시가 돼서야 마무리된다.

3∼4시간 자고 다시 출근하는 생활이 매일 반복되면서 어린 딸은 아빠를 제대로 볼 시간이 없다.

저녁에 잘 때 옆에 있어 달라며 우는 딸을 두고 대리운전 일을 나갈 때가 제일 힘들다.

그런 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잠든 아내와 딸을 보면 막막함과 허탈감이 몰려온다.

성민씨는 "눈 뜨는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계속 일만 하니까 몸이 갈리는 기분이 들어요. 그냥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했어요. 이렇게 살아도 언젠가는 해결된다는 가닥이라도 잡히면 좋겠지만,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지금은 그냥 희망도 없이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김모50대·여씨는 이혼 후 전 재산1억7천만원을 털어 마련한 전셋집을 전세사기로 날렸다.

충격으로 삶의 의욕을 잃은 김씨는 마음의 담을 쌓고 사회와 멀어졌다.

더없이 예쁘고 소중했던 집은 어느새 쓰레기장이 됐고, 창문을 언제 열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집 안은 곰팡내가 진동한다.

"내가 도둑처럼 몰래 들어와 사는 느낌이에요. 처음에는 예쁘고 깨끗했던 집이 이젠 폐허가 됐어요. 내 마음처럼요."

이혼 후 새 출발을 다짐하며 개업했던 라이브카페도 충격으로 문을 닫았다.

가족도 돈도 잃은 김씨는 하루에도 몇번씩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지만, 요양원에 있는 노모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사업을 하다 망한 거라면 억울하지도 않지. 세금 잘 내고 열심히 착실하게 살아왔는데, 왜 매번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당해야만 하나요. 너무 억울해서 그냥 살고만 있어요. 숨이 붙어 있으니 사는 거죠."

김씨는 땅이 꺼지도록 거푸 한숨만 내쉰다.

2년 전 대전 지역 전세사기 사태가 수면 위로 드러났지만, 피해 복구가 늦어지면서 피해자들의 삶은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해 사기를 당한 대전 지역 피해자 대부분은 곧 살던 집을 나가야 한다.

끝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20∼30대 사회 초년생들은 원치 않는 파산에 내몰렸다. 최후의 수단으로 개인회생을 택하고 있다.

대전 전세사기피해대책위 부위원장 박상연30씨는 "아내와 투잡을 뛰어도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고 다른 집을 구하는 돈을 마련하기 빠듯하다"며 "전세사기를 당한 뒤 개인의 삶과 가족의 행복이 무너졌다. 일상의 평범함이 사치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young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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