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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민속촌 인턴 귀신…손님들이 비명 지를수록 짜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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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32회 작성일 24-07-13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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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한국민속촌 공포 체험장
나는 ‘인턴 귀신’이다

귀신도 밥은 먹고 다닌다. 조유미 기자가 용인 한국민속촌에서 구미호 처녀 귀신 분장을 한 채 냉면을 먹고 있다. 옆에 빈 그릇들은 다른 귀신들이 해치운 것이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귀신도 밥은 먹고 다닌다. 조유미 기자가 용인 한국민속촌에서 구미호 처녀 귀신 분장을 한 채 냉면을 먹고 있다. 옆에 빈 그릇들은 다른 귀신들이 해치운 것이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뭐야, 뭐 먹는 거야?” “저거 냉면이야?” “귀신이 냉면 먹는다!” 웅성웅성.

밥을 먹고 있을 뿐인데 뒤통수에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나의 존재만으로 야외 식당은 술렁였다. “파전도 먹어?” “뭐야…. 귀신이 왜 저렇게 많이 먹어.” “실망이야.” 실망이라니, 선지 해장국이라도 먹었어야 하나. 아랑곳않고 나는 일단 먹었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니까.

나는 지금 귀신이다. 짝사랑만 하다가 죽은 과년한 처녀 귀신. 그새 죽었냐고? 그건 아니다. 난 지금 한국민속촌 공포 체험장 ‘살귀옥’에서 귀신 분장을 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살귀옥은 매년 4~11월 운영된다. 보통 으스스한 저녁 시간대가 인기지만, 7~8월 폭염기에는 낮 시간대 체험까지 매진될 정도로 인기 만점. 노성원 한양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공포를 느끼면 추위를 느낄 때처럼 몸이 움츠러들고 소리를 지르며 쾌감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귀신의 집’에서 우리를 기만하는 귀신들도 다 사람이다. 이 귀신들은 점심으로 볶음밥 먹고 가끔 쉬면서 믹스 커피 마신다. 살아 있는 귀신의 하루는 어떨까. 한여름에 귀신을 찾는 소비자들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귀신 체험’을 다녀왔다. 서늘한 공포로 더위를 시원하게~. 납량 특집 전설의 ‘아무튼,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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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귀신 구미호입니다

“처녀 귀신으로 할까요?” “구미호가 낫지 않을까?” 오후 2시쯤. 용인 한국민속촌 공포 체험장 컨테이너 상황실에선 ‘인턴 귀신나’ 콘셉트 정하기가 한창이었다. 처녀 귀신은 눈가에, 구미호는 입가에 피를 흘린다고. 난 이것저것 다 하고 싶은 욕심쟁이 귀신이었다. ‘시집 못 가고 죽었는데 원한이 서려 간도 빼 먹는 구미호 처녀 귀신’을 선택했다. 필수라는 가발은 쓰지 않았다. 이날을 위해 머리를 한없이 길렀기 때문.

귀신 교육을 받을 차례. 이곳엔 실내·외 아홉개 구간이 있다. 관객이 모든 구간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5분. 그 동안 곳곳에서 귀신이 튀어나온다. 현장 상황을 조율하는 봉한글 감독이 “잘 보라”며 체험장 38곳을 비추는 실시간 CCTV 영상을 가리켰다. 귀신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개미처럼 일하고 있었다. 관객이 입구에 들어서자 봉 감독이 “스탠바이간다!”를 외쳤다. 귀신들 사이에 “#xe3e9;#xe3e9; 아웃” 같은 무전이 오갔다. ‘관객이 #xe3e9;#xe3e9; 구간을 지났다’는 신호. 그럼 다음 구간의 귀신이 출동 준비를 한다. 봉 감독이 내게 “숨어 있다 튀어나오는 것부터 해 보라”고 했다. 그리하여 일단 ‘실내 무덤 뒤에 서 있는 귀신 1′ 역할이 맡겨졌다.

아직 밝은 시각, 진행 도우미를 따라 내 위치인 컴컴한 굴 속으로 이동했다. 나와 마주친 덥수룩한 머리의 귀신이 “엄마야, 깜짝이야”라고 했다. 나는 “안녕하세요. 저는 새로 온 구미호”라고 공손하게 말했다. 그는 “못 보던 귀신이네요. 저는 내시입니다”라고 했다. 정확히는 ‘김처선다리와 혀가 잘려 죽었다는 조선 시대 환관’ 귀신이란다. 사람이나 귀신이나 콘셉트가 확실해야 살아남는 세상이었다.

◇소극적인 “어” “오” “아”

몇 차례 손님을 받은 나는 다소 시무룩해졌다. 기대만큼 손님들이 놀라질 않았기 때문이다. 야심 차게 머리를 풀어 헤치고 무덤 뒤에서 스르륵 나타났는데, 학생 다섯명은 묵직하게 “오…!” 하고 말았다. 그 다음 손님은 “아” 했다. 그 뒤로도 “어” “오” “아”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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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러 나온 귀신들이 몰려와 ‘족집게 특강’을 시작했다. “부끄러워 말고 다 내려놔요. 악에 받쳐서 소리를 질러야 해요.” 믹스 커피를 6잔째 들이켜던 ‘산송장’ 방성진24씨가 말했다. 맨 첫 사람 말고 둘째 사람을 놀래라, 웃으면서 뒤에서 쫓아가라…. 진짜 귀신도 귀가 솔깃할 꿀팁이었다. 이곳에 있는 귀신 절반은 전문 행사 요원이고, 나머지는 연극·뮤지컬 업계 종사자라고. ‘사또 귀신’이 “벌건 대낮이라 초보 귀신은 놀래기 어려울 수 있다. 밤을 기다리라”고 했다.

분장 정비 겸 식사 시간. 귀신도 밥을 먹는다. 직업 귀신들은 식판에 밥을 담아 조신하게 먹었다. 메뉴는 쌀밥과 김칫국, 감자반, 총각김치와 어묵볶음. 나도 요기를 하러 체험장을 벗어났다. 소복을 입고 오방색 천이 펄럭이는 언덕을 내려가자 사방에서 깜짝 놀라댔다. 식당 아주머니도 “어우, 깜짝아”, 자판기에서 콜라 뽑다가 “어우, 깜짝아”, 화장실에 들어서자 “어우, 깜짝아.”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면 망부석처럼 굳었다. 인형 처키나 호박 나부랭이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한국 귀신의 한恨을 보여주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걸었다. 날 빤히 보던 꼬마 아이에게는 ‘괜찮아, 사람이란다’는 의미로 히죽 웃어줬다. 아이는 울먹거렸다.

◇마침내 “아아악!!!!”

밤이다. 난 귀신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해보기로 했다. 무수리였던 나는 왕을 흠모하다가 왕의 서른일곱 번째쯤 되는 악독한 첩에게 사약을 받고 죽었다고 상상했다. 내가 왕한테 고백을 한 것도 아니고, 말로 잘 타이르면 되는 건데 실로 못돼먹은 첩인 것이다. 참나.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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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기탱천한 날 보더니 감독이 “바로 그거다. 이번엔 뒤에서 쫓아가는 것까지 해보라”며 위치를 붉은 조명 비치는 으슥한 문 뒤로 바꿔줬다. 스피커에서 곡소리와 함께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노래가 흘러나왔다. 순간 어떤 작가가 자신이 집필하는 책의 극적 효과를 위해 등장인물 몇을 죽여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자서전이었다는 괴담이 떠올랐다. 등골이 서늘해지며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귀신이여, 그려! 내가!

오후 7시. 손님이 입구로 들어섰다는 소식이 들렸다.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구간이 긴 탓에 손님들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속이 바싹 타들었다.

마침내 손님이 내 눈앞에! 소리를 지르며 손님들에게 몸을 던졌다. “아아악!”손님1 “아아아악!”손님2 “꺄악!”손님3 배운 대로 하얀 치마를 손에 쥐고 앞서 도망가는 손님들을 쫓아 달렸다. 그러면서 목청을 높여 “깔깔” 웃었다. 이렇게 외치면서. “같이 가!” “나도 데려가!” 달리는 속도를 조절하며 맨 뒷사람의 옷자락을 잡을 듯 말 듯 손짓했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었지만 공포감을 주기 위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일행은 혼비백산했다.

“잘했어요. 빠져나가면서 거의 울던데?” 내 다음 번 코스에 있는 한 귀신이 다가와 엄지를 척 올리며 칭찬해줬다. ‘이 맛이구나….’ 매우 뿌듯했다. 손님 비명 듣는 게 이렇게 짜릿할 줄이야.

공포 체험장에 앉아 있는 ‘직업 귀신’ 옆에 서 있는 모습.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공포 체험장에 앉아 있는 ‘직업 귀신’ 옆에 서 있는 모습.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1만3000원 이상의 서늘함

귀신들의 근무 시간은 오전 11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예약이 없는 시간에는 쉴 수 있지만, 손님들이 줄을 서는 여름철엔 종일 악을 쓰며 일을 한다. 여름철 근무의 힘든 점을 묻자, ‘김처선’ 유백만25씨는 “더위와 날벌레”라고 했다. 비좁은 공간에 숨어 있기 때문에 덥고 숨을 쉬는 것도 답답하단다. 그의 머리카락은 흘린 땀에 푹 절어 있었다. 벌레도 꼬인다. 마치 인간 ‘벌레 채집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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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실 시체’ 역할의 이선호27씨는 “장마철엔 바닥도 축축하고 습도도 높아 특히 힘들다”며 “그래도 손님들이 날 보고 깜짝 놀라주면 ‘내 역할을 했다’는 생각에 보람차다”고 했다. 1만3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더위를 날리려 공포 체험장을 찾은 손님을 위해, 귀신들은 더위를 온 몸으로 맞으며 일하고 있었다.

밤 9시 30분쯤, “고생하셨다” 인사하고 퇴근하는 길. 문득 영화 ‘링’이 생각났다. 귀신 배우는 TV에서 기어나오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앞으로 여름이면 등장하는 곳곳의 ‘귀신’을 볼 때마다 이날의 비명이 들려올 것 같다. “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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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미 기자 youand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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