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20년 전 오늘. 2004년 7월 13일 인간이길 스스로 거부한 악마의 손에 의해 스무번째 희생자가 발생했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사이코패스라는 낯선 단어가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를 마련한 인물. 같은 혈액형의 여성 장기를 먹은 엽기범죄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연쇄살인을 저지른 바로 그자 유영철이다.
유영철은 출소 13일 후인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수도권에서 20명의 모르는 사람들을 오직 잔혹하게 죽인다는 목적으로 살해했다.
◇ 불행한 유년기, 정두영 롤모델 삼아…살인 사례 연구
유년 시절 체육에 소질이 있던 유영철은 육상 단거리 선수 등으로 활동했고, 예능에도 소질이 있던 그는 화가를 꿈꾸며 예고에 입학하려고 했지만, 색약 등의 이유로 좌절됐다. 가정에서는 계모와 생활하며 불행한 시간을 보낸 그는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며 청년기부터 다양한 범죄를 저질렀고, 21살 결혼해 아이를 낳았지만, 절도 등의 범죄를 일삼았고 공무원 사칭, 미성년자 강간 혐의로 붙잡혀 교도소 생활을 했다.
이후 양육권을 뺏기고 일방적인 이혼을 당하는 과정에서 아내와 아들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지만, 갑자기 마음을 바꿔 다른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이때 그는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9명을 살해한 또 다른 연쇄살인자 정두영을 자신의 롤모델로 삼고 그의 범행 사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2003년 9월 11일 출소한 유영철은 10여일간 친어머니의 집에 머물렀다. 이 기간 유영철은 교도소에서 연구한 살인 방법을 실행하기 위해 칼과 망치 등을 이용해 큰 개를 죽이며 가장 효과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실험을 했다. 그렇게 손잡이가 짧은 4㎏짜리 쇠망치를 살인 무기로 삼기로 결정하게 된다.
◇ 2003년 9월24일 첫 살인…부유층 대상 범행 시작
출소 13일 뒤인 24일 유영철은 자신이 계획한 첫 살인을 실행한다. 명예교수 살인 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으로,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70대 명예교수와 60대 아내를 둔기로 살해했다. 이유는 없었다. 당시 유영철은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철저히 지문이나 발자국 등을 제거했다.
보름 뒤 종로구 구기동에서 주차 관리원의 집에 침입해 80대 노모, 60대 며느리, 지체 장애가 있는 30대 아들을 쇠망치로 살해했다. 이후 10월 16일 강남 삼성동 2층 단독주택에 침입해 60대 여성을 살해하며 경찰 감식 결과 일주일 전 구기동 살인사건과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연쇄살인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가 시작된다.
본격 수사가 시작됐지만,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한 달 뒤인 11월 18일 유영철은 종로구 혜화동에서 80대 집주인과 50대 파출부를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이때 강도범의 소행으로 현장을 꾸미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기 피가 흐르자, 집에 불을 질러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
현장을 수색하던 경찰은 당시엔 흔치 않았던 CCTV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녹화된 테이프를 분석해 수배 전단을 전국에 배포했다. 부유층을 대상으로 범행을 이어가던 유영철은 이로 인한 두려움으로 4개월 정도 살인을 멈췄다.
◇ 애인에게 이별 통보, 윤락여성으로 타깃 변경 11명 추가 살인
살인이 재개된 건 2004년 3월이었다. 이때부터 유영철의 범죄 패턴이 바뀌게 된다. 유영철은 당시 만나던 여성에게 이별을 통보받자, 전화방과 출장 마사지 업소 여성으로 타깃을 바꿨다. 불법 업소 여성은 실종돼도 신고할 가능성이 적다는 점을 노렸다.
앞선 범죄보다 여성들을 상대로 더욱더 잔혹하게 살인이 진행됐으며, 이때부터 일어나는 범죄는 영화 추격자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4월 14일 돈이 필요했던 유영철은 서울 중구 황학동의 도깨비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던 40대 남성을 승합차로 유인해 살해했다. 비아그라와 음란 CD를 판매하는 피해자의 동태를 살피다가 위조한 경찰관 신분증을 제시하면서 수갑을 채워 승합차 조수석에 태웠다. 돈을 뜯어내려고 했던 유영철은 피해자가 신분을 의심하는 태도를 보이자, 그간의 범행이 들통날 것을 우려해 잭나이프 등으로 마구 찌른 뒤 쇠망치로 머리를 내려쳐 그를 살해했다.
오로지 살인만을 위해서 범행을 벌이던 유영철은 반복되는 살인에 자신의 행위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 갔고 범행의 시간 주기는 더욱 빨라졌다.
유영철은 3월 16일 전화방 도우미23를 목 졸라 살해 후 암매장한 것을 시작으로 폭주가 시작됐다.
그는 4~5월 전화방 도우미신원불명 20~30대, 5월 조건만남 여성25, 6월 2일 전화방 도우미35, 6월 전화방 도우미신원불명 20대 후반, 6월 9일 출장 마사지사26, 6월 18일 전화방 도우미27, 6월 25일 출장 마사지28, 7월 2일 출장 마사지사26, 7월 9일 출장 마사지사24, 7월 13일 출장 마사지사27 등 윤락 여성 11명을 추가로 살해했다.
◇ 지문 도려낸 뒤 암매장…혈액형 같은 여성의 장기 먹어
살인의 방식은 설명을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자신의 오피스텔로 여성들을 부른 그는 먼저 몸을 씻으라는 요구를 하며 욕실로 들어간 여성의 머리를 쇠망치로 강타해 기절시킨 후 칼로 시신을 처리했다.
해부학까지 공부한 유영철은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하도록 손가락의 지문을 모두 도려냈으며, 시체를 절단해 암매장했다. 또 DNA 검증 과정에서 자신의 신원이 드러날 게 두려웠던 그는 살해한 여성들과 관계를 맺지 않았다. 금전과도 상관없었다. 그의 목적은 오직 살인 한가지였다.
유영철은 여성의 생전에 미리 혈액형을 물어본 뒤 자신과 혈액형이 같은 여성은 살해한 뒤 그 장기를 4차례 먹었다고 뒷날 수사기관에 진술하기도 했다.
◇ "걔는 내가 편하게 죽였다" 법정에서 유족들 우롱
연쇄살인마 유영철은 7월 15일 출장 마사지사들이 계속해서 실종되는 것을 수상히 여긴 업주의 신고로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한차례 도주 끝에 16일 경찰에 의해 다시 체포됐다.
체포 후에도 유영철은 경찰들에게 "여기 있는 형사들 다 특진시켜 주겠다" "계급이 낮은 경찰관은 나를 상대 못 한다. 어느 정도는 돼야 나와 대화할 수 있다" 등 반성 없이 호기를 부리는가 하면 "이 일로 인하여 부유층들은 더욱 각성했으면 좋겠고 여자들은 함부로 몸을 놀리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해 대중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특히 법정에서 그는 방청석을 향해 욕설하며 의자를 부수는 난동을 피웠으며, "당신 딸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아냐? 걔는 내가 편하게 죽였다"고 유족들을 우롱했다.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도 교도관과 동료 수감자들을 상대로 행패를 일삼던 유영철은 조직폭력배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등 끝없는 잡음을 만들었다.
지난해 9월 25일 대구교도소에 있던 유영철은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다. 서울구치소는 현재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형 시설을 갖춘 유일한 장소다.
khj8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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