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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 아버지와 셋방살이…집수리가 이렇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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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11회 작성일 24-09-1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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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셋방 한 달 살이, 이웃들의 어려운 삶도 이해하게 돼

[이혁진 기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연재 <베이비부머의 집수리> 는 오래된 집을 수리하며 느낀 점을 정리한 기록이다. 노후를 위해 집을 수선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여러 생각과 시행착오들이, 베이비부머 등 고령자와 그 가족들에게 공감이 되고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란다. <기자말>

95세 아버지와 셋방살이…집수리가 이렇게 쉽지 않다
거실에 빨래 건조대와 몇 개의 짐꾸러미를 두니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비좁다.
ⓒ 이혁진

오늘은 집수리 현장보다는 집을 떠난 월세 셋방살이 모습을 소개하려고 한다. 우리 부부뿐이라면 대수롭지 않지만 95세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바깥살이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먼저 말한 대로 우리는 6월 중순 동네 가까운 곳에 있는 한 달짜리 단기임대 빌라로 이사했다. 10평 크기 빌라 거실은 빨래 건조대와 2~3개 짐꾸러미만 두어도 비좁아 마치 피난민 수용소 같았다.

단순히 장소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몇 개 안 되는 살림을 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올해 여름은 얼마나 더웠던가. 폭염으로 움직이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한 달살이 고난이 예상됐다.

아내는 이를 감안해 고령의 아버지를 양로원이나 양로병원에 얼마 동안 입주나 입원시키는 방안을 거론했다. 아버지를 보다 안락하게 모시려는 뜻이지만 아버지는 아직 그럴 만한 신세가 아니라고 할 것이 뻔했다. 나도 반대했다.

아버지는 되레 집수리와 이사하는 데 자신 문제로 신경 쓰지 말라고 몇 번이나 강조할 정도로 심지가 굳은 분이었다. 내심 걱정했지만 아버지를 믿기로 했다.

10평 빌라로 들어간 우리 부부와 95세 아버지

아버지가 빌라 현관 입구에서 전자키를 작동하고 있다.
ⓒ 이혁진

빌라는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아버지 걸음으로는 족히 20분 거리. 오갈 수 있는 가까운 장소를 골랐지만 아버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4층에 사는 것은 처음이다.

이사 오기 전 아버지에게 빌라 현관문과 4층 집 비밀번호와 함께 전자키 사용법을 알려드렸다. 집에서 쓰던 디지털 도어록과 상당히 달라 나도 헷갈렸다. 귀가 어둡고 전자키 소리를 듣지 못 하는 아버지는 번호를 반복해 누르거나 실수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전자키에 대한 적응은 예상보다 빨랐다. 아내에게 사용법에 대해 한 번 물어보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생소한 환경은 아버지로선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잠자리가 바뀌거나 새로운 변화 자체가 두려울 수 있다. 아버지보다 훨씬 젊은? 나도 예민한 편이다.

사실 내가 아버지를 더 걱정했던 부분은 경로당을 제대로 다닐까 하는 것이다. 경로당까지 거리가 예전보다 멀고 그 길에 횡단보도가 몇 개 더 있어 안전사고를 우려한 것이다.

지팡이를 든 아버지가 경로당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 이혁진

한 번은 아버지 뒤를 따라 갔다. 걱정과 달리 아버지는 지팡이에 의지하면서 횡단보도를 조심스레 건넜다. 경로당에 들어가는 걸 보고 되돌아왔다. 경로당에서 집으로도 잘 찾아오셨다. 나는 귀가한 아버지를 보고 몇 번이나 치켜세웠다.

집이 좁다 보니 식사 분위기도 달라졌다. 아버지와 내가 먼저 식사하고 이후 아내가 혼밥하는 식사 패턴으로 바뀌었다. 거실과 주방 사이 식탁 놓을 공간이 없어 빚어진 상황이다.

이곳 빌라는 옵션상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이 구비돼 있지 않다. 식탁도 없는 곳이다. 여러 옵션을 두루 갖춘 곳도 더러 있었지만 입주 일정이 맞지 않아 구하지 못 했다. 테이블 식탁을 따로 구할까도 생각했지만 집에 있는 2인용 좌식 밥상을 대신 쓰기로 했다.

살던 집은 누추해도 밥과 국, 3~4개 반찬은 늘 올려놓을 수 있는 테이블 식탁이 있다. 웬만해선 틀지 않는 오래된 에어컨도 그리웠다.

바깥에서 한 달 살면서 본 이웃들의 풍경

주방과 방 사이 거실에 테이블 식탁 놓을 공간이 부족해 2인용 좌식 식탁을 이용했다.
ⓒ 이혁진

어색한 풍경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빌라에 화장실은 한 개, 아버지와 나는 각자 휴대용 소변기를 준비했다. 아내가 화장실을 편히 사용하게끔 한 배려인데 아내도 자기 요강을 따로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큰것?을 보려면 화장실에 누가 있는지 미리 확인하는 절차가 일상이 됐다. 나는 중간에서 그 일을 철저히 교통정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집수리 현장을 지키다 저녁에 빌라로 복귀할 땐 폭염 때문인지 피곤했다. 선풍기는 뜨거운 바람을 불어대고 있었다. 불편한 게 많아 빌라에서 지내는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마침 이때 아내 건강도 안 좋았다. 고생이 많다는 말에 "1개월만 참으면 되는데 뭘요?"라는 아내 표정에 나도 모르게 힘이 났다. 고달픈 아내는 내가 불평 없이 현장에 있는 것에 고무된 것 같았다.

한편 우리가 사는 빌라는 조선족과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이 사실은 주차 문제로 서로 인사하다 알았다. 이들은 내게 깍듯이 인사하면서 자신의 직업과 주차하는 시간대까지 자세하게 말했다. 오랜만에 순수한 이웃 감정을 느끼는 기분이다.

그러면서 빌라에는 서로 아는 조선족들이 많다고 귀띔 했다. 다들 어려운 처지에서 단기 셋방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서로 의지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이들은 예의도 발랐다. 빌라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 나를 보면 담배를 뒤로 감추거나 껐다. 이는 나도 어릴 적 어른들에게 했던 행동인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빌라의 주차 문제는 심각해 밤이나 새벽에 몇 번이나 호출됐다. 그러나 나는 이들의 힘든 삶을 이해하기에 군말 없이 차를 빼주었다. 수고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바깥에 한 달 살면서 남이 사는 모습을 얼핏 봤다. 나보다 더 힘겹게 살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도 많았다. 불편한 환경에서 가족은 서로 의지하며 격려하는 구성원이라는 사실도 새삼 확인했다.

빌라 가족들과 정들 즈음 우리는 진짜 우리 집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역시 살던 옛집이 편하고 좋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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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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