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폭우의 습격…"떠내려갈거 같아 살려달라 소리쳤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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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장선천 범람으로 고립됐던 노인들…배관 기둥 매달리며 버텨
주택 진흙으로 뒤덮이고 전기도 끊겨…"오늘 밤은 잘 수 있을지 막막" 완주=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 "집 안으로 물은 차오르지, 쓸려온 물의 압력으로 문은 안 열리지, 창문을 깨고 집 밖으로 가까스로 탈출했어요. 안 그랬으면 정말 큰일 났을 거예요." 폭우가 내린 10일 이른 아침, 전북 완주군 운주행정복지센터 2층 대피소에 모여 있던 이완우80씨가 밤사이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하며 바짝 마른 입맛을 다셨다. 아내와 같이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이씨는 이날 오전 3시 30분께 거센 빗줄기 소리에 잠에서 깼다고 했다. 창밖을 보니 집 앞 장선천의 물이 불어나 거센 소용돌이를 치며 휘돌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낀 이씨와 그의 아내는 당장 덮고 있던 이불 하나와 휴대전화를 챙겨 유리창을 깨고 집 밖으로 나왔다. 이미 거실까지 습격한 거대한 냇물의 수압으로 방문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씨 앞에는 축축해진 이불이 놓여 있었다. 그는 "비가 오니 몸이 추웠다. 아내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마당 앞의 배관을 손으로 꽉 잡고 있었다"며 "119에 신고한 뒤 배관 기둥에 매달려 구조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소방대원들도 물이 워낙 많이 차오르다 보니 당장 집으로 건너오질 못했다"며 "다행히 빗줄기가 조금 약해지면서 범람했던 물도 서서히 줄어드는 게 보였고, 대원들이 보트를 타고 우리 쪽으로 건너왔다. 아, 이제 살았구나 싶었다"고 놀란 마음을 쓸어내렸다. 이씨 옆에 있던 안희인88씨도 지난 밤만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고령인 안씨는 귀도 잘 안 들리고, 혼자 사는 탓에 빗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했다. 안씨는 "2시쯤 깼는데 방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집 밖으로 나가봤는데 물이 무릎 높이까지 차올라 있었다"며 "이대로 집에 있으면 떠내려가겠다 싶어서 사람 살려달라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때 누군가가 나를 업고 밖으로 나갔다. 행정복지센터에 주민들이 모여있다고 하니 거기로 가 보라고 했다"며 "누군지는 몰라도 정말 고맙다. 몸이 아파서 집에 있었으면 정말 큰일이 났을 거다"라며 안도했다. 장선천이 흐르는 인근 엄목마을에서는 제방이 무너지기도 했다. 엄목마을에 거주하는 김상원65씨는 "오전 4시 반쯤 되니 우르르 쾅하며 천둥이 친 뒤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며 "혹시나 큰 피해가 있는 건가 싶어서 집 밖으로 나와 있던 주민과 같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봤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소리가 난 곳은 제방 인근이었다. 김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마을 주민이 농막으로 쓰던 컨테이너가 쿵 하고 넘어지고 제방이 무너지는 광경이었다. 그는 "컨테이너에 부딪힌 전봇대 3개가 뒤로 넘어갔고, 전기선이 물과 닿으면서 파바박하며 크게 불꽃이 터졌다"며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감전이 걱정돼서 서둘러 옥상으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체 이게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다. 작년에도 비가 많이 오긴 했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당장 비가 더 오면 또 하천이 넘칠 수 있는 만큼 터진 제방을 빠르게 임시 조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4시 11분께 완주군 운주면사무소 인근 장선천이 넘쳐 주민들이 고립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소방당국은 집 옥상 등 높은 곳에 올라가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던 주민 18명을 순차적으로 전원 구조했다. 소방대원들에 의해 구조되거나 대피한 주민들 10여명은 운주행정복지센터에 모여 있다. 인근 운주파출소와 운주동부교회 등으로도 대피했으며, 주민 대부분은 건강에 큰 이상이 없는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새벽 폭우로 범람한 강물이 덮친 평온한 시골 마을의 노인들은 대피소 창밖으로 쏟아지는 비를 속절없이 바라보며 간밤의 악몽을 서로 털어내며 언제 집에 돌아갈 수 있는지를 걱정하는 듯했다. 대피소에 있던 김영군74씨는 "전기도 다 끊겼다. 집에 가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일단 주민센터에 나와 있다"며 "새벽부터 한숨도 못 잤는데 오늘 밤에는 조금이나마 잘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war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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