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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날고 싶었던 새들··· 퍽 오늘도 유리벽 앞에 떨어졌다 [하상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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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2회 작성일 23-11-1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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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창 충돌로 죽는 조류, 매해 800만 마리
독수리 스티커 등 효과 없는 저감조치 여전
관련 법안 마련됐지만 실효성 제한적
민간건축물 발생 사고에는 무방비
그저 날고 싶었던 새들··· 퍽 오늘도 유리벽 앞에 떨어졌다 [하상윤의 멈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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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죽은 새들이 눈에 밟혔다. 금방이라도 깨어나 다시 날 것 같은 새도 있었고, 이미 오래도록 토양에 스미고 스며 백골로 변한 새도 있었다. 고개를 들자 족히 10미터를 훌쩍 넘기는 유리 방음벽이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벽 너머엔 가까이서 차들이 빠르게 달렸고 삼삼오오 행인들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리도 전해지지 않았다. 바람도 소리도 없는 침묵의 공간에서 새들은 우수수 추락했다. 수천 년간 수풀 사이로, 강물 위로, 자연이 만든 풍경 안에서 자유로이 날던 새들에게 유리 벽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올가미나 다름없다. 건너편이 말갛게 보이지만 몸소 지날 수 없는 유리의 물성을 그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들이 하늘길로 힘껏 날다 ‘퍽’하고 유리에 부딪혀 땅에 꼬꾸라지는 일은 전국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위성사진을 보며 찾아간 서울 뉴타운에서도, 경기 신도시에서도, 광역지자체의 도심에서도 이 같은 추락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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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연간 국내에서 투명 구조물 충돌에 의해 목숨을 잃는 조류는 약 800만 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투명방음벽에 논의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조류 충돌의 대부분은 건물 유리창에서 발생하며 이로 인해 연간 약 765만 마리가 죽는다. 충돌로 즉사하거나 움직이지 못하는 새들의 대부분은 건물 화단에 가려지고 고양이 등 포식자에 의해 금방 제거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건물 조류 충돌을 인식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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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의 유리 충돌이 지속해서 발생하는 것은 유리가 가진 두 가지 상반된 성질인 ‘투명성과 반사성’에 기인한다. 소음 차단과 조망권 확보를 목적으로 투명하게 만들어진 유리 방음벽은 새들의 시선이 벽 건너편 나무나 서식처까지 관통하면서 날아가 닿을 수 있다고 인지하도록 해 위험 요소로 작용한다. 반면 건축물 외벽에 조형미와 채광, 조망 등을 위해 설치된 유리 외벽이나 창은 건너편 숲이나 하늘 등을 그대로 반사하면서 새들이 이를 실재라고 착각하고 날아들게 해 또 다른 위험 요인이 된다. 특히 최근 들어 유행처럼 사용되는 로이 유리에너지 절약형 유리는 표면에 도금한 금속으로 인해 반사성이 극대화하는데, 이러한 소재로 겉면을 꾸민 건물은 거대한 거울이 되어 새들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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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벽에 충돌하는 새들의 사망률은 매우 높다. 대부분 두개골 함몰, 안구 손상, 장기 파열 등의 중상을 입고 내부 출혈 탓에 사망한다. 일단 사고가 일어나면 치료를 받는다 해도 재활이 어려워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 애당초 반사율이 낮고 불투명한 유리를 사용하는 것이 사고 확률을 낮출 수 있으며, 기존에 설치된 유리 구조물에 대해서는 새들이 유리를 장애물로 인지할 수 있도록 시각적 단서를 만들어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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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새들은 높이가 5㎝보다 낮고 폭이 10㎝보다 좁은 공간은 통과하지 않는다. 이것은 ‘5×10 규칙’이라고 정의되는데, 유리 벽이나 창에 조류 충돌 저감용 필름을 부착한다면 최소 5㎝×10㎝ 간격으로 부착해야 효과를 높일 수 있다. 한편 조류 충돌 저감을 위한 수단으로 꽤 오래도록 널리 사용돼 온 ‘독수리맹금류 스티커’는 효과가 전혀 없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실제로 지난 9일 찾은 광주광역시 북구의 한 신축 아파트 가장자리 방음벽 아래에는 노랑턱멧새, 오색딱따구리, 물까치 등 조류 사체가 집중적으로 발견됐는데, 현장 바로 위로 맹금류 스티커가 촘촘하게 붙어 있었다. 해당 아파트 관리소의 관계자는 “시공할 때 ‘그냥 맹금류 스티커 붙이면 된다’던 구청 직원의 설명에 따랐는데, 그게 효과가 없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면서 “실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조차도 아직 이 사안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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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조류 충돌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면서 지난 6월에는 관련 법안이 마련됐다. 공공건축물에는 야생 조류가 부딪치지 않도록 식별 무늬를 부착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그러나 벌칙 조항이 없는데다, 민간건축물이 전체의 97%에 달하는 국내 현실에서 법안의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유새미 녹색연합 활동가는 “시·구청 단위 담당자들이 바뀐 법을 제대로 인지하고 현장에 적용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라며 “조류 충돌과 관련해 지속해서 질의하고, 대응을 촉구하고, 민간 영역으로 변화의 흐름이 옮겨가도록 도울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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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전 뿌리와새싹 윈도우스트라이크 모니터링팀 팀장은 “새들이 유리에 부딪혀 죽는 건 로드킬과 비슷한 맥락의 문제로 보고 있다”면서 “인간들이 편의에 따라 새들이 다니는 하늘길을 막았고 이는 야생동물의 이동권과도 그대로 이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생 신분이던 2019년부터 교내에서 발생하는 윈도우스트라이크를 모니터링해온 김 팀장은 “야생생물법이 바뀌었지만 강제성이 없는 지침의 성격이기에 각 건축 구조물에 섬세하게 접근하고 적용되기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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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팀장은 “지난 21년 이화여대의 학관 리모델링 계획안에서 외관에 유리 소재가 대거 포함된 걸 미리 확인하고, 학교 측에 시공 단계에서 조류 충돌 저감 조치를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묵살됐다“면서 “완공된 해당 건물에서는 예상 그대로 충돌 조류의 사체가 발견되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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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인디언에겐 말을 타고 달리다 멈칫 말을 세우고 내려 뒤를 돌아보는 오래된 의식이 있었습니다. 발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상윤의 멈칫]은 치열한 속보 경쟁 속에서 생략되거나 소외된 것들을 잠시 되돌아보는 멈춤의 시간입니다.

하상윤 기자 jony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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