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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만삭 아내 둔 심정지 환자, 헬기로 120km 이송해 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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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72회 작성일 23-11-2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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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서 쓰러진 40대 대동맥박리 환자,

서울까지 120km 헬기-특수구급차 이송

기적처럼 살아나 갓 태어난 아들 마주해

“모든 톱니바퀴 맞물려 환자 소생”


20일 오전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입원실. 태어난 지 사흘 된 아들 딱풀이태명를 영상통화로 처음 마주하는 정일수 씨40의 눈빛이 애틋했다. ‘딱 붙어 있으라’는 뜻으로 지어준 태명이 유난히 소중하게 느껴졌다. 불과 3주 전, 정 씨는 강원 원주시에서 심장 대동맥이 찢어져 심장이 멎은 채 쓰러져 발견됐기 때문이다. 120km 떨어진 이 병원으로 옮겨져 국내 최고의 명의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수술을 집도한 송석원 이대서울병원 대동맥혈관병원장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은 “정 씨가 살아난 건 기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온라인/단독/만삭 아내 둔 심정지 환자, 헬기로 120km 이송해 소생




● 닥터헬기-특수구급차 동원해 120km 이송

정 씨는 지난달 28일 오후 강원 원주시의 한 요양병원에서 친척을 면회하던 중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일행이 심폐소생술CPR을 하며 119에 신고했다. 오후 1시 58분경 인근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검사 결과 A 씨는 찢어진 심장 대동맥에서 흘러나온 피가 심낭에 차올라 심장이 제대로 뛰지 않는 상태였다. 급성 대동맥박리였다.

긴급 수술이 필요했지만 근처엔 가용한 의료진이 없었다. 정 씨를 수술해 줄 병원을 찾아 수소문한 끝에 120km 떨어진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이 ‘환자를 데려오라’고 응답했다.

오후 4시 18분, 정 씨가 응급의료 전용 헬기닥터헬기에 올랐다. 헬기 안에서도 정 씨는 심정지를 맞았다. 헬기에 함께 탄 의료진이 여러 차례 정 씨의 심장을 마사지해서 되살려냈다. 헬기는 당초 이대서울병원 옥상 헬리패드로 직행할 계획이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헬기가 뜨고 내릴 수 있도록 항공당국의 허가를 받은 병원 옥상 헬기장이었다. 하지만 기상이 나빠 병원 인근 하늘의 시정視程·목표물을 뚜렷하게 식별할 수 있는 거리이 좋지 않았다.

오후 4시 45분, 헬기는 병원을 약 15km 앞둔 용산구 노들섬 헬기장에 내려야 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올림픽대로는 토요일 저녁 나들이 차량으로 꽉 막혀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다행히 헬기장에선 서울에 4대뿐인 서울중증환자공공이송센터SMICU 소속 대형특수구급차 중 1대가 정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에서 중환자실에 필적하는 치료가 가능한 구급차였다. 구급차 안에서도 정 씨의 심장은 여러 차례 멈췄다. 의료진이 승압제를 고용량으로 투약하며 정 씨의 혈압을 올리려 노력했다. 꽉 막힌 도로를 헤치고 구급차가 이대서울병원에 도착한 건 오후 5시 19분. 첫 응급실로 이송된 지 3시간 21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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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새워 혈압 올려 가까스로 수술

당시 정 씨의 수축기 혈압은 50㎜Hg으로 정상치120㎜Hg의 절반도 안 됐다. 혈압이 돌아오지 않는 한 수술을 시작하는 건 무리였다. 환자의 몸이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동맥박리 등 심장질환 환자를 5000명 넘게 수술한 송 교수도 “지금껏 봐온 환자 중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고 말할 정도였다.

정 씨의 아내는 만삭의 몸을 이끌고 병원으로 찾아와 중환자실 앞에서 초조하게 의료진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송 교수는 “환자 가족에겐 객관적인 상황을 정확히 전달하는 게 최선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심정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밤을 새워 정 씨의 심낭에 바늘을 꽂아 피를 빼내며 상태를 지켜봤다. 심낭에 차오른 피가 심장을 압박하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다음날인 29일 아침부터 정 씨의 혈압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정 씨는 반쯤 의식을 차려 의료진과 눈까지 마주쳤다. 이날 점심 무렵 시작한 정 씨의 수술은 오후 늦게 마무리됐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수술 이후 정 씨의 심장 기능이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

정 씨가 중환자실에서 회복을 마치고 일반병실에서 안정을 찾아가던 17일, 정 씨의 아내가 무사히 출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 씨는 20일 아내와 영상통화를 하며 아이 앞에서 약속했다. “만나면 우리 아기 꼭 안아줄게. 앞으론 술 담배도 안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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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류’ 일상화된 의료 현실에 기적 같은 일”

현장 의료진들은 정 씨가 살아난 게 응급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떠도는 ‘표류’가 일상이 된 의료 현실에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정 씨에게 CPR을 해준 일행은 물론이고, 그를 첫 병원으로 이송한 119구급대, 닥터헬기에 동승한 의료진과 조종사, 서울시 SMICU 의료진 등 수많은 이들 중 한 명이라도 없었다면 정 씨를 소생시킬 수 없었다는 얘기다. 송 교수는 “지역·필수의료가 붕괴하는 상황에서 정 씨처럼 이송과 치료에 관여한 모든 톱니바퀴가 다 맞물려 돌아간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이대서울병원 대동맥혈관병원은 올 6월 문을 열었다. 송 교수를 비롯해 국내 최고 수준의 대동맥 수술팀이 모였다. 365일 24시간 전국에서 대동맥박리 환자를 이송받아 수술하는 ‘EXPRESS 시스템’을 통해 지금까지 177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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