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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지하철 미세먼지 수치에 가려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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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07회 작성일 23-11-2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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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기사
뉴스토리 <지하철 공기 질 실태 보고> 취재 후기 ①

"미세먼지 수치는 이상 없이 뜨거든요. 만약에 거기 이상이 있으면 환경부나 우리 쪽으로 비상 알람이 떠요. 수치상으로는 이상이 없으니 괜찮은 건데… 저희가 관리를 좀 소홀히 한 부분은 있네요." 한국철도공사 관계자

취재를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지하철 공기여과장치 관리 실태를 취재하던 지난 10월 19일도 그런 날이었습니다.

▲ 지난 11월 11일 SBS <뉴스토리> 방영분 뉴스토리>

자연 환기가 어려운 지하철 지하역사는 외부 공기를 유입해 사용합니다. 여러 단계의 필터를 거쳐서 미세먼지와 초미세머지를 최대한 걸러낸 공기가 승강장이나 대합실로 들어가는 건데요, 이 역할을 담당하는 핵심이 공기여과장치입니다. 큰 철망으로 만들어진 1차 필터에서 담배꽁초 등 큰 이물질을 잡아내고, 2차 필터에서 미세먼지의 일부를 걸러낸 공기는 작은 컨테이너처럼 생긴 공기조화기로 유입됩니다. 물로 세척하는 방식의 부직포 필터로 나머지 미세먼지를 걸러내고, 마지막 4차 미디움 필터에서 초미세먼지를 잡아냅니다.

일반인 출입 불가 지하철 공조실, 어떻게 취재했을까

취재진은 이 공기여과장치 관리가 부실하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2021년부터 매년 국정감사에서도 지적이 돼 왔던 문제였습니다. 취재진이 입수한 제보 사진과 영상 속에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를 걸러내야 하는 필터가 터져서 너덜너덜하거나, 공기가 통과하기도 어려울 만큼 먼지가 덕지덕지 눌러 붙어 있었습니다.

실제 현장이 어떤지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지하역사 공기여과장치는 공기조화실공조실 또는 환기실이라고 불리는 공간에 설치돼있습니다. 일반 승객들은 출입이 불가능한 공간입니다. 기자라고 출입이 자유로울 리 없습니다. 관련 문제를 꾸준히 지적 해온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홍기원 의원실을 통해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측에 현장 취재를 요청했습니다. 예상보다 수월하게 취재가 허가됐습니다. 코레일 측은 "2021년 국감에서 처음 지적을 받은 후 공기 필터 관리 매뉴얼을 만들고, 문제가 있는 설비들을 개선해왔다"고 밝혔습니다.

취재를 요청했던 곳은 서울과 수도권 지역 3개 지하철역. 문제가 있는 필터를 사용 중이라고 제보를 받았던 지하철역이었습니다. 코레일 관계자들의 동행 하에 이뤄진 취재. 사실 이렇게 사전 취재 요청을 한 현장에서 부실한 관리 실태가 드러날 가능성은 적습니다. 언론사가 취재를 가기로 했는데 문제가 있는 설비를 그대로 둘 리 없으니까요. 실태 파악에 한계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최소 공기여과필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실제 모습을 직접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3개 지하철역, 3곳의 공조실에 들어가 취재했습니다. 예상했듯 필터들은 매뉴얼대로 관리가 잘 되고 있었습니다. 제보 사진 속 모습과는 달리 깨끗이 청소돼 있고, 터지거나 먼지가 과하게 쌓인 필터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해당 지하철역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수치도 실내공기질관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지하역사 기준치미세먼지는 1㎥당 100마이크로그램㎍, 초미세먼지는 50마이크로그램㎍ 이하였습니다.

여러 노선이 지나가는 지하철역의 경우 공조실은 여러 개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취재를 갔던 지하철역은 2개 노선이 지나가는 곳이었습니다. "다른 공조실도 한번 가볼 수 있을까요?" 사전에 취재 협의가 되지 않았던 공조실로 향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은 이때 발생했습니다.

[취재파일] 지하철 미세먼지 수치에 가려진 비밀

"자회사가 위탁 관리하는 곳…미세먼지 수치는 문제없다"

공조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앞서 취재했던 3개의 공조기와는 달리 매캐한 공기가 입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세척형 부직포 필터3차 필터의 뒷면에는 시커먼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는데 앞서 취재했던 지하철역에서는 확인했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또 필터가 아예 빠져서 구멍이 뚫려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3차 필터가 빠져있으면 미세먼지가 걸러지지 않은 채 공기가 유입됩니다. 초미세먼지를 잡아내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4차 필터에 가해지는 압차압의 크기가 더 커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필터가 감당할 수 있는 압의 크기를 넘어서면 필터는 터지게 됩니다. 1, 2, 3차 필터가 제 역할을 잘 해줘야만 4차 필터의 수명이 길어지고 초미세먼지를 제대로 잡아낼 수 있습니다.

기자와 동행했던 코레일 관계자들은 급히 현장 관리자를 찾았습니다. "앞서 취재했던 지하철역은 코레일 본사가 공조실을 관리하지만 이 역은 자회사에 위탁을 맡기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현장 관리자에게 물었습니다.
기자 : 3차 필터가 빠져있는 부분들이 있던데 왜 빠져있는 거예요?
관리자 : 필터가 풍압을 못 이겨서 망가지고 부서지는 그런 게 좀 있고 그래서….
기자 : 압을 못 이겼다는 건 필터에 먼지가 많이 쌓여있는데 계속 압을 주니까 터졌다는 거죠?
관리자 : 그런 부분이 없지 않아 있긴 한데… 하여간 매번 청소는 지속적으로 하고 있어요.
기자 : 얼마에 한 번씩 청소하세요?
관리자 : 일주일에 한 번은 해요.

코레일 자체 관리 지침상 세척형 필터는 주1회 이상 청소하게 돼 있습니다. 관리소장의 말은 매뉴얼과 일치합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앞서 확인한 지하철역의 필터도 매뉴얼대로 청소하고 관리한 필터들이었습니다. 똑같이 주 1회 청소를 했다는 건데 관리 상태는 크게 달랐습니다. 초미세먼지 대부분을 잡아내는 4차 미디움 필터는 매뉴얼상 분기에 한 번씩 교체해줘야 하는데, 미디움 필터도 앞서 확인했던 다른 지하철역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먼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습니다. 습기와 기름기를 머금은 먼지는 손가락으로 파내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기자 : 미디움 필터는 언제 마지막으로 교체하셨어요?
관리자 : 저희가 이제 1년에 한 번씩은 하고요. 좀 더 더럽다고 판단되면 분기 정도에….
기자 : 분기에 한 번 교체하는 게 매뉴얼이라고 하던데요?
관리자 : 네 원래 그렇기는 한데….
기자 : 이건 정확히 언제 교체하셨어요?
관리자 : 제가 정확하게 날짜는 잘 모르겠는데요. 작년 한 10월 정도인가?
기자 : 지금 몇 월이죠? 10월이죠? 1년 됐네요? 1년 된 거라고 보면 되나요?
코레일 본사 관계자 : 아니, 이거필터 교체한 실적 갖고 와보세요. 1년이나 됐을 리가….
관리자 : 물건은 2년 전에 샀는데, 이건 재작년에 산 거고, 일부는 또 작년에 사고….
기자 : 그러니까 최소 1년 이상 됐다는 이야기잖아요?
관리자 : 네… 네.

코레일 본사 관계자들은 이날 함께 현장에서 확인한 관리 부실 상태에 대해 이런 입장을 밝혔습니다. "자회사에 위탁을 맡기다 보니까 관리소장님들이 예산이나 이런 이유로 인해서 필터 관리를 소홀히 한 것 같다. 저희가 주별, 월별, 분기 점검을 하고 있는데 가끔씩 이런 세세한 부분을 놓치는 것 같다." 본사가 관리하는 지하철역은 잘 되고 있지만 위탁 관리 맡긴 일부 지하철역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지하철역의 공조실을 다 들어가 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 해명의 진위를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현장에 있던 코레일 고위 관계자는 취재가 마무리 될 무렵 관리 소홀은 인정하지만 미세먼지 측정 수치는 기준치 이하이기 때문에 공기 질에는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해명을 했습니다. 실제 해당 지하철역은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농도는 기준치를 넘어서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없는 걸까요?

넓은 지하철 역사, 미세먼지 수치 측정 지점은 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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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을 유심히 보시면 공기 질 측정 지점 이라고 쓰인 표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운영하는 실내 공기질 관리 종합정보망 인에어에 실시간으로 뜨는 초미세먼지 농도는 각 지하철역의 특정 지점에서 측정된 수치입니다.

지하철 역사의 크기와 무관하게 이 측정 지점은 한 곳이고 주로 승강장에 위치합니다. 지하철 전동차가 다니는 터널, 승객들이 전동차를 기다리는 승강장, 개찰구가 있는 대합실 등 공간의 특성마다 공기 오염원도 다르고 초미세먼지의 농도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특정 지점에서 측정된 초미세먼지의 수치가 전체 지하철역의 공기 오염도를 나타내는 건 한계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지하역사의 초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해 공개하는 건 굉장히 바람직한 일입니다만, 현재처럼 측정하는 센서를 지하철 역사 내 한 군데만 두는 것보다는 여러 군데 설치해서 입체적으로 모니터링이 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나타나는 수치는 한 부분의 데이터라고 볼 수 있어요. 측정을 안 하는 것 보다는 무조건 좋습니다만, 지하 역사 전체 공간에 대한 대표성을 얼마나 가질지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조영민 경희대 환경공학과 교수

물론 측정의 한계가 있음에도 초미세먼지 수치가 기준치를 훌쩍 넘는 지하철역도 많습니다. 지하철 1호선 등 주로 지어진 지 오래된 노후화한 지하철 역사들이 대부분인데, 이런 곳들의 공기 질 개선이 가장 우선 과제가 돼야 할 겁니다. 하지만 기준치 이하라는 수치에 가려진 실태도 꼼꼼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하철역 3곳만 확인해봤는데도 공기여과필터 관리 상태는 제각각이었습니다. 미세먼지 기준치를 넘지 않는다고 해서 지하철 역사 공기 질 관리가 문제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단언하긴 어렵습니다.

물 세척형 필터에 대한 현장의 문제 제기

취재 과정에서 물로 세척하는 방식의 필터가 관리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는 현장 관계자들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물로 세척하면 더 깨끗이 닦일 것 같지만 ▲밀폐되고 좁은 공기 조화기 공간의 특성, ▲기름기가 많은 지하철 역사 내 먼지의 특성 때문에 비효율을 유발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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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부직포 필터는 노즐로 물을 분사해 세척하는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물로 세척한 후 고압 공기를 쏴서 건조시킵니다. 고압 공기를 쏜다고 해도 완벽한 건조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 취재 과정 중에도 공조기 바닥에 물이 흥건히 고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4차 미디움 필터는 정전력을 이용해 초미세먼지를 잡아내기 때문에 가능한 건조한 환경에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물로 세척하는 3차 필터와 4차 미디움 필터는 간격이 70cm 남짓 떨어져있을 뿐 밀폐된 공조기 내에 나란히 설치돼 있습니다. 노즐에서 분사된 물기가 미디움 필터로 튈 가능성이 매우 높고, 수분을 머금은 공기에 노출될 수밖에 없으니 필터가 눅눅하고 축축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습기를 먹으면 정전력은 떨어지게 됩니다. 미디움 필터를 생산해 국내외 기관에 납품하는 홍필천 코리아에어필터 대표는 "습한 환경에서는 미디움 필터의 기능이 저하된다. 정전력으로 걸러지던 것들이 못 걸러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풍압을 못 이겨서 터지는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중에는 물로 세척하지 않아도 되는 소재의 필터들도 개발돼 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보완 제품들이 있는데도 바뀌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박덕신 철도기술연구원 실장은 "물로 세척하는 방식 자체가 가장 쉽다. 그래서 여전히 물로 세척을 하고 있다. 시스템 자체를 한꺼번에 다 바꾸기가 쉽지는 않기 때문에 아직 사용하는 곳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지하철역의 경우는 현재 사용 중인 공기여과필터 제품 성능이 시방서물품 설명서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곳들도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추가 취재를 진행 중입니다. 코레일은 방송이 나간 후 문제가 발생한 지하철역의 필터를 전수 조사하고 결함이 있는 제품을 전면 교체했다고 밝혀왔습니다. 매뉴얼에 따라 관리를 제대로 하도록 현장 관리자 교육을 강화하고, 공기 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지하철 공기 질 취재를 하면서 그래도 미국 뉴욕이나 영국 런던 지하철 같은 곳에 비하면 한국 지하철은 깨끗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많은 전문가들도 한국 지하철의 설비 관리 상태나 공기 질 개선을 위한 노력은 해외 국가와 비교해 뒤처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도 지하역사 공기 질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5년간 2천127억 원이라는 거액의 예산을 투입했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개선될 여지가 있음에도 상대적 우수성에 대책 실행이 지지부진하다면 그건 문제입니다. 실제 지하철 공기 질 개선 사업에 2천억 원이 넘는 국비가 투입됐지만 지방비 확보, 관련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인력 확보 등 "제반 여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산이 집행되지 않은 사업도 적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번듯한 대책도 실행되지 않으면 서류로만 남을 뿐입니다.

박수진 기자 star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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