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국은 그를 두번 버렸다…덴마크 입양인 법정서 운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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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수집기 작성일 23-11-29 16:47 조회 33 댓글 0본문
1974년 덴마크로 입양된 한분영씨는 태권도 선수로 활동하다가 2004년 한국에 정착했다. 2000년대초 한국에 처음왔을 때 모습. 사진 한분영씨 지난 24일 법정을 나선 한분영49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3년간 자신을 괴롭힌 보험 사기 일당에 대한 재판이 있던 날이었다. 이날 인천지법 부천지원 형사1부부장 김정아는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와 보험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황모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황씨가 주도한 사기극에 가담한 9명에 대해서도 각각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한씨를 포함한 30여명을 상대로 약 31억원을 편취한 혐의를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배상책임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형사 절차에서 배상명령을 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며 피해자들의 배상명령신청은 기각했다. 황씨 일당에게 빼앗긴 1억원을 되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었던 한씨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다. 어린 시절 덴마크로 입양됐던 한씨는 서툰 한국어로 “민사재판을 해야 하는데 언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 않냐. 언제쯤 답답한 마음이 사라질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 부모에 버림받고 떠난 해외 입양 한분영씨에 대한 기록은 1974년 해외 입양을 떠나기 전 머물렀던 보육원에 남은 원아대장이 유일하다. ‘한분영’이란 이름과 ‘건강상태 허약’이란 짤막한 메모가 그에 대한 유일한 정보였다. 사진 한분영씨 한분영씨는 1995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유럽 태권도 선수권대회에 출전해 1등을 차지했다. 그는 태권도 덕에 사진으로만 보던 한국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사진 한분영씨 친부모는 찾지 못했지만, 한씨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조금씩 녹아들었다. 연세대 어학당을 거쳐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한국외대에서 덴마크어를 강의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좋아하지 않던 덴마크 이름 대신 ‘꽃가루가 날린다’는 의미의 ‘분영’이란 이름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종종 찾아간 입양인 모임에서도 여러 도움을 받았다. ━ 돌아온 모국, 그러나 두 번째 아픔 한분영씨는 두번이나 그를 버렸지만 한국에 실망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진 한분영씨 ━ “입양인들의 아픔, 되풀이되지 않길” 지난 6월 29일 국회 한분영씨맨왼쪽를 비롯한 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 구성원들이 해외입양인 인권 침해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 한분영씨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J-Hot] ▶ 40시간 만에 모텔방 나온 알몸 손님…방안엔 ▶ 로또 2등 노가다꾼 죽음…아들은 외면했다, 왜 ▶ 호스트바에 日여성 줄섰다 "1억 외상에 성매매도" ▶ "언제적 강남스타일, 부산 9초뿐" 엑스포 PT 어땠길래 ▶ 70대 스님 분노의 질주…"보상 안해?" 車 8대 쾅쾅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심석용 shim.seokyong@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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