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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유방 좀…" 친절하던 노인, 바다 한 가운데서 짐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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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0회 작성일 23-12-31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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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집행 사형수들]⑦오종근

2007년 8월 31일 오종근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들의 디지털카메라에서 나온 오종근의 뒷모습. /SBS

2007년 8월 31일 오종근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들의 디지털카메라에서 나온 오종근의 뒷모습. /SBS

“피해자들이 옷을 제대로 입고 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단추를 안 잠그고 떡 벌려 놓은 상태에서 젖꼭지만 가린 채 유방이 불룩 나와 그런 생각이 들게 했다.”

단 한번 반성이 없었다. 그릇된 욕정으로 남녀 넷을 살해하고도 내내 피해자를 탓했다. 사형을 선고받고선 그 제도 탓을 했다. 헌법재판소에서 사형제 합헌 결정이 나자 그제서는 억울하다고 했다.

“나가 사실 배 태워 달라고 해서 배 태우고, 빠진 사람 신고 안 한 죄밖에 없제.”

17년 감옥살이 동안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었다. 아내와 딸 둘, 아들 다섯 모두 그를 등졌다. 맏이는 살인 사건이 있던 그해 “수치러워 못견디겠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내는 60년 가까이 터 잡고 살던 동네를 떠났고, 그 동네는 ‘범죄자 마을’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

이른바 ‘보성 어부 살인 사건’ 장본인인 오종근85 이야기다.

연쇄살인범 오종근은 일평생 바다에서 밥벌이를 했다. 국민학교를 채 마치지 못한 무학無學이었다. 열살 무렵부터 주꾸미 잡는 어부로 줄곧 살았다. 165㎝ 키에 체구는 작았지만 뱃일을 오래 해 육십 줄을 넘어서도 힘이 셌다. 69세 나이로 젊은이 넷을 죽인 오종근의 판결문엔 “젊은 사람들이 기계장비로 하고 있는 일을 맨손으로 할 수 있을 정도” “힘은 젊은 사람 못지않게 센 편”이라는 대목이 있다.

/KBS, SBS

/KBS, SBS

처자식도 있었다. 21세 때인 1959년 아내를 만나 2남 5녀를 뒀다. 가정은 그럭저럭 화목했다. 오종근에 대한 이웃들 평가는 박하지 않았다.

“시장에 있는 사람들 다 아저씨를 좋아해요. 순하니까, 아저씨가.”

“빼빼 마르고, 자그마해서 영감이 순하게 생겼어. 엄청 순하게 생겼지.”

“그 사람이 그랬다고? 지금도 상상이 안 가요.”

이웃들은 고집은 세지만 말수가 없는, 순박한 외모의 촌로로 그를 기억했다. 범행이 알려진 뒤 충격이 더 컸던 이유다. 다만 한 이웃은 그의 평소 품행에 이런 평가를 내렸다.

“남자가 ‘각시질혼외 여성과의 성관계를 낮잡아 이르는 전남 방언 잘하는 것만 빼면 괜찮았어.”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까지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을까. 그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2006년 이후 나이가 들면서 아내와는 성관계를 갖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 이듬해, 오종근은 한 달 새 넷을 죽인 연쇄 살인마로 변했다. 공교롭게도 그 동인은 모두 ‘성욕’이었다.

1~3심 판결문과 경찰과 검찰 수사 기록을 보면, 사형수 오종근의 범행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망망대해에서 이뤄진 범행의 진실은 오로지 오종근 밖에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를 재구성하면 이렇다.

2007년 10월 2일 오종근이 경찰관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그는 담당 경찰관의 지시에 따라 피해자들을 선착장에서 우연히 만나 자신의 배에 태우는 과정을 말없이 재연했다. /연합뉴스

2007년 10월 2일 오종근이 경찰관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그는 담당 경찰관의 지시에 따라 피해자들을 선착장에서 우연히 만나 자신의 배에 태우는 과정을 말없이 재연했다. /연합뉴스

“할아버지, 저희가 배를 한 번도 안 타봤는데 한 번만 태워주시면 안 돼요?”

2007년 8월 31일은 ‘작고 마른 69세 어부’가 처음 살인을 저지른 날이다. 회천면 동율리 앞 우암선착장에서 출항을 준비하던 오종근에게 다가간 19세 동갑내기 대학생 커플 김모 씨와 추모여 씨가 피해자였다.

오종근은 인심 좋게 둘을 태우고서 득량만 해상으로 배를 몰았다. 자기 주꾸미 어장이 있는 곳이다.

어장에 도착할 때쯤 오종근은 갑판에 걸터앉아 있는 추씨를 보고 갑자기 성욕을 느꼈다. ‘가슴 한번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방해가 될 것 같은 남자친구를 먼저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추씨 옆에 앉아 바다를 감상하던 김씨 뒤로 다가가, 그대로 등을 밀었다.

/MBC

/MBC

김씨는 허우적대며 다시 배에 오르려 했지만, 오종근은 갈고리가 달린 2m 가량의 막대로 찌르고, 내려치고, 밀어냈다. 그물이나 큰 물고기를 끌어올릴 때 쓰는 속칭 ‘삿갓대’였다. 김씨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돼 떠내려갔다. 오종근은 혼자 남아 떨고 있는 추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가가서 손을 뻗으며 “아가씨, 유방 좀 단도리해블자”라고 말했다.

추씨는 뿌리치며 저항했다. 승강이가 이어졌고, 오정근은 “같이 죽어브러라”라며 추씨마저 바다에 밀어 빠뜨렸다. 추락한 추씨는 뱃전을 붙잡으며 버텼지만, 오종근은 김씨를 때렸던 그 도구로 그녀를 바다로 밀어냈다.

추씨는 바다에 빠지기 전인 오후 6시 26분부터 5분 동안 네 차례에 걸쳐 119 통화를 시도했다. 그 가운데 네 번째 119 신고 녹음 파일에는 뱃소리, 바닷소리와 함께 전라도 말씨를 쓰는 오종근의 육성이 잠깐 나온다. 딱 1.2초다.

“어서어디서 무전질이여?”

범행이 끝나고 해가 저물어 어두워질 무렵 그는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뭍으로 나가지 않고 배 안에서 잤다. 다음날 일어나고서는 주꾸미잡이에 쓰이는 어구를 정리한 뒤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살았다.

사흘 뒤, 보성 옆 고흥 앞바다에서 추씨 시신이 먼저 발견됐다. 이틀 뒤엔 보성군 득량면의 한 선착장에 남자친구 김씨 시신이 떠올랐다. 김씨 시신은 훼손이 유독 심했다.

<변사자 김씨 사체검안서 中>변사자>

왼쪽 어깨뼈, 왼쪽 위팔뼈, 양쪽 발목 부근 정강뼈 및 왼쪽 종아리뼈 부위의 골절상

팔, 다리, 머리 등 온몸에 광범위한 피부 까짐, 터지고, 찢긴 상처, 타박상

그러나 당초 경찰은, 살인을 의심하지 않았다. 실족사나 동반 자살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래서 오종근은 평소처럼 생업을 이어가다가, 20여일 뒤 같은 방식으로 ‘선상 위 살인’을 또 저질렀다.

전남 보성 바다. /한경진 기자

전남 보성 바다. /한경진 기자

그해 9월 25일. 추석을 맞아 보성으로 여행간 조모사망 당시 24세씨와 안모사망 당시 23세씨는, 배 위에서 보는 바다가 궁금했다. 태워줄 배를 찾아나섰지만, 명절이라 조업하는 배가 드물었다. 출항하는 배가 마침 한 척 눈에 띄었다. 하필 오종근의 배였다.

“저, 바다를 구경하고 싶은데요.”

단죄받지 않은 범행은 똑같은 방식으로 재연됐다.

오종근은 몇 차례 거절하다가 못 이기는척 부탁을 받아들였다. “근디 여그 말고, 저그 저짝에 있는 선착장서 쫌만 기댕기고 있어. 나가 걸로 태우러 갈 것잉게.” 그가 가리킨 선착장은 인적이 드문 외진 곳이었다. 목격자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이었다. 먼젓번과는 달리, 피해자들을 태우기 전부터 범행을 마음먹은 것이다.

두 사람은 별다른 의심 없이 시골 어부의 배에 올랐다. 배가 멈춰선 곳은 득량만 해상. 20여일 전 남녀 대학생을 살해한 곳과 같은 장소다. 왜 또 이곳을 골랐을까. 프로파일러 표창원은 한 방송에서 그 장소의 성격을 이렇게 정의했다.

“살아오면서 유일하게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지배하고 마음껏 감정을 발산할 수 있는 공간.”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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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에서 3시간가량 어로 작업을 하다가, 또다시 그의 내면에서 성욕이 움텄다. 안씨 가슴께에 슬쩍슬쩍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는데, 안씨는 그 범의를 육감적으로 알아챘다. 도움을 요청하는 문자메시지를 외부에 보냈다.

‘저희 아까 전화기 빌려드린 사람인데요. 배 타다가 갇힌 거 같아요~~ 경찰보트 좀 불러주세요.’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오종근을 말릴 수 없었다. 그는 안씨에게 다가가면서, 그 때처럼, 젖가슴을 만지고 싶다는 말을 면전에서 했다. 뭍에서 봤던 사람 좋던 어부는 그 순간 없었다.

“아가씨, 나는 작년부터 관계를 못하는디 아가씨 유방이라도 단도리해브러도 돼요?”

/SBS

/SBS

내뻗는 손길을 안씨는 쳐내면서 반항했고, 조씨는 오종근 몸통을 붙잡으며 그를 막아 세웠다. 오종근은 안씨를 선박 바닥에 패대기치고선 바다로 빠뜨렸다. 조씨도 목을 조르고 넘어뜨렸다가 바다로 밀어넣었다.

그 과정에서 오종근도 물에 빠졌다. 다만 뱃일이 익숙한 그 어부는 곧바로 배에 올라탔다. 조씨는 조류에 휩쓸려 이내 사라졌다. 안씨는 배에 다시 오르려고 했지만, ‘삿갓대’질을 이겨내지 못했다. 며칠 뒤 시신 두 구가 보성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오종근은 그러고서도 태연했다. 주꾸미를 채취하고, 어구를 정리한 뒤, 선착장으로 돌아갔다. 일상을 살았다. 선착장 인근 평상에서 쉬고 있던 이웃 주민들에게 괜스레 다가가 주꾸미를 내보이며 이런 말도 했다. 혹여 있었을지도 모를 목격자들에 대한 ‘면피성’ 발언이다.

“추석날이니까 비싸게 팔릴 것 같아 조업을 갔다. 칠십 먹은 내가 자지도 안 서는데 어떻게 여자 2명을 데리고 가야.”

그러나 그 다음날, 오종근은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수상쩍은 분위기를 눈치챘던 안씨가 오종근에게 당하기 전 외부에 보낸 구조 요청 문자메시지가 단서가 됐다. 오종근의 배에서는 피해자들 신용카드와 볼펜,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카락 수십 가닥이 나왔다.

/KBS

/KBS

오종근은 처음엔 혐의를 부인했다. “안씨는 소변을 보기 위해 선미에서 선수 쪽으로 이동하던 중 실족해 바다에 빠졌고, 조씨는 이를 잡으려다 같이 바다에 빠졌다”는 것이다. 살인이 아니라 안전사고라고 했다.

경찰은 선박에서 나온 증거물과 피해자들 시신에 대한 부검 소견 등을 들이대며 진술의 모순점을 추궁했다. 오종근은 결국 범행을 시인했다. 8월 31일자 사건도 자신이 벌인 일이라고 실토했다. 그러나 반성은 없었다.

“내가 죽을 운이 뻗쳤다.”

“내 팔자가 그렇다.”

“피해자들이 운이 없었다.”

“서로 죽이고 죽으라는 팔자로 태어났는가 보다.”

심지어는 “피해자들이 옷을 제대로 입고 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단추를 안 잠그고 떡 벌려 놓은 상태에서 젖꼭지만 가린 채 유방이 불룩 나와 그런 생각이 들게 했다”는 것이다. 살인의 동인을 운이나 팔자소관으로 돌리고,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한 것이다.

1심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남녀 4명을 자신의 배에 태워 무참히 살해하고 체포된 후 범죄를 부인하는 등 재범의 우려가 있어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선고 전날에서야 반성문을 제출한 오종근은 사형이 언도되자 곧바로 항소했다.

/법원

/법원

오종근은 항소하면서는 재판 전략을 바꿨다. 사실관계를 호도하고 감정에 읍소했다. 다만 사형만은 면하려 양동작전을 폈다.

종전 진술을 뒤집고 ‘안전사고’라는 주장을 다시 꺼내들었다. 죽인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피해자들을 구하지 못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범행 당시 술에 취해 있었다며 심신 장애도 주장했다.

불우했던 가정사를 들먹이며 “첩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말도 했다. 일찍이 친모가 죽고 나서는, 이복 자식으로 집안에서 차별받으며 서럽게 자랐다고 읍소했다. 고령이라 신체적으로 쇠약해져 있다고도 주장했다.

사형제의 위헌 여부를 따져 묻기도 했다. 그 제도가 “인간의 기본권과 존엄성을 침해한다”고 했다.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이 받아들여졌지만, 2010년 2월 헌재는 재판관 9명 중 5명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조선일보 한경진 기자는 헌재 결정 뒤 수감 중이던 그를 직접 면회한 적이 있다. 당시 기자가 ‘합헌 결정이 났다’고 말을 건네자, 그는 눈물이 차오른 충혈된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합헌이 무엇입니까?”

항소심은 오종근이 내민 ‘사실오인’ ‘심신장애’ ‘양형부당’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도 오종근의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 판결을 확정했다.

“진솔한 참회나 최소한의 피해회복도 외면한 채 허무맹랑한 변명만 무책임하게 늘어놓아 피해자들 및 유족들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주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개전의 정이나 장차 건전한 사회생활에 복귀할 수 있는 개선·교화의 가능성을 찾기는 어렵다.”

오종근은 우리나라 사형수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올해로 85살이다. 그가 살해했던 젊은이 네 명이 살다간 딱 그 만큼을 더하면 귀하의 그 나이가 된다. 오종근은 최근까지도 별다른 지병 없이 건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종근은 아직도 억울하다고 한다.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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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진 기자 cccv@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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