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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렁 8년째 구순 어머니 간병…생활비·약값은 오롯이 빚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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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2회 작성일 24-02-05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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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회생 상황에 처한 김민자가명씨가 지난해 12월14일 서울 서대문구 반지하 방에서 어머니를 보살피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간병은 순간의 자유도 허용하지 않는다. 심장병과 신우신염을 앓는 96살 어머니를 돌보는 김민자가명·65는 하루 21시간 동안 그렇다. 시간에 맞춰 죽과 약을 챙겨야 한다. 낙상하거나 상태가 급변할까 싶어 침대 곁을 떠나지 못한다. 유일한 자유 시간은 요양보호사가 방문하는 오후 4시부터 3시간 동안이다. 그렇다고 이 시간만 딱 떼어 일을 할 수도 없다. 김민자도 허리 협착 때문에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간병과 병원이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은 지옥과 같다. “그래도 어머니가 있으니 근근이 사는 거죠. 지금도 어머니라는 숙제만 마치면 죽자고 생각해요.”



8년 동안 어머니 간병에 갇히게 되면서 생활비와 어머니 약값은 오롯이 빚이 되었다. 그 빚이 5천여만원으로 불어나면서 김민자는 2년 전부터 개인회생에 기대고 있다. 소득이 없는 이에게 빚을 탕감해주는 개인파산이 아니라 원금 일부를 갚게 하는 개인회생을 선택한 건 돈을 빌려준 친구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개인회생을 통해 금융기관 대출 500만원을 5년에 걸쳐 갚고 있다. 간병과 채무 사이에서 김민자는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병원에 가서 우울증 약을 몇번 탔는데 약값이 부담스러워서 ‘어지럽고 잘 안 듣는 것 같아요’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담당자가 눈치를 채고 ‘병원비 걱정이 되어서 그러시는 거죠?’라고 하더라고요. 그냥 눈물이 터졌습니다.”



가족 파산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경제적 붕괴의 원인은 간병 부담이다. 가족에게 당연한 듯 간병과 돌봄을 맡기는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서 간병과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은 점점 늘어나지만 정작 일을 할 수 없어서 이 비용을 감당하기 위한 소득은 점점 줄어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간병 살인이나 가족 살해 후 자살이라는 파국으로 치닫기도 한다.





한겨레가 파산 신청자 12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빚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원인’을 묻는 질문에 11.7%15명가 ‘의료비 지출’을 이유로 꼽았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최근 2년 동안 간병비는 전년 대비 9% 이상 오르고 있다. 2019년 3.1%, 2020년 2.7%였던 간병비 상승률이 2021년 6.8%로 급격히 뛰더니 2022년 9.2%, 2023년은 9.3%나 올랐다. 하루 12만~13만원씩 한달이면 400만원가량의 간병비가 든다는 호소가 나오는 까닭이다. 파산 관재인인 김창수 변호사는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누군가는 간병을 해야 하는데, 꼭 간병이 아니더라도 돌봄을 하다 보면 소득이 떨어지게 되고 이 때문에 카드로 버티다가 개인파산이나 개인회생으로 가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김민자씨가 자신이 복용하는 약을 여행용 가방에서 꺼내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주성철59도 코로나19와 간병 부담 탓에 파산 신청을 했다. 대리운전 일을 했는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술자리가 줄어드니 소득이 확 줄었다. 그런 와중에 어머니가 쓸개 쪽에 병이 생기면서 병원과 요양병원을 오가게 됐다. 병원에서 코로나19 때문에 가족은 간병을 할 수 없다고 해서 간병인 비용도 따로 냈다. 그렇게 2020년 중반부터 제2금융권 대출을 받기 시작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1년 동안 간병비로만 3천만원 정도를 빌렸다. 생활비까지 더해서 그 빚은 2~3년 사이 8천만원으로 불어났다. 주성철은 지난해 파산 신청을 하고 건설 현장에서 일해서 번 돈으로 면책되지 않는 빚 일부를 갚으면서 최종 면책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제가 옷을 자주 사 입고 외식도 자주 하고 술을 자주 먹고 사치를 하고 그런 건 아니거든요. 검소한 건 또 아니지만 소박하게 살아왔는데, 이상하게 티도 안 나게 돈이 없어져버리더라고요. 가족에 대한 원망은 없어요. 내 인생이고 내 업보다, 생각하고 순리대로 받아들여야지요.”



딸이 겪은 종교 사기와 집 화재 피해로 빚 부담을 겨끈 황순희오른쪽씨가 지난해 11월17일 전북 남원시 자택에서 생계 수단인 공공근로 근무표를 남편 정청일씨에게 보여주고 있다. 황씨는 허리디스크로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사기 피해나 주식 투자로 가족 파산하기도





한겨레가 만난 파산 신청자 중에서는 사기를 당한 가족 구성원을 도와주다 함께 채무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사례도 많았다. 한겨레의 파산 신청자 128명 설문조사에서 채무의 주요 원인으로 ‘사기’를 꼽은 이는 13.3%17명였다.



전북 남원에서 농사를 짓는 황순희80와 정청일84 부부는 둘째 딸 정소망47이 종교 사기 피해를 당하면서 집안이 기울었다. 딸은 2003년부터 종교 공동체에 발을 들였고, 2022년 거기서 벗어날 때까지 19년 동안 착취를 당했다. 황순희 부부는 여러 차례 종교 공동체를 찾아갔으나 딸을 만나지 못했고, 되레 “딸이 아프다”는 말에 치료비 격으로 2천만~3천만원 정도를 종교 공동체에 사실상 강탈당했다. 황순희 명의로 대출을 받아서 낸 돈이었다. 딸이 가져간 카드의 결제 대금이 다달이 날아오기도 했다. 이후에는 정소망의 남매 4명도 수천만원의 돈을 빼앗겼다.



그러다 10년 전 정청일이 뇌출혈로 쓰러지고 이후 혈액암과 위암, 퇴행성 관절염까지 겹치면서 매달 100만원 정도의 병원비를 쓰게 됐다. 5만원짜리 영양주사를 맞지 않으면 거동조차 힘들지만, 빚 때문에 돈을 아끼느라 저렴한 주사를 찾아서 맞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5년 전에는 누전으로 집에서 불이 나 새로 집을 짓는 데 또다시 1억원 정도 대출을 받았다. 그나마 가족은 딸 정소망이 파산 신청으로 빚을 탕감받고, 황순희 부부의 빚은 큰아들54이 건설현장 일용직 일로 갚아나가면서 서로 의지해 살고 있다. “아들이 ‘노가다’로 1년에 700만원씩 빚을 갚고 있어요. 그 돈 다 갚으면 자기 70대 된다고 하더라고요.” 황순희가 말했다.



황씨 부부 자택 부엌 천장에 ‘고생 후 행복, 고생 뒤 행복’이라고 적힌 텀블러가 놓여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최근에는 주식이나 코인 투자 실패가 가족을 파산으로 내모는 경우도 많다. 한겨레의 파산 신청자 128명 설문조사에서 채무의 주요 원인으로 ‘주식이나 코인 투자 실패’를 꼽은 이는 9.4%12명였다. 서울회생법원의 ‘2022년 개인파산사건 통계조사 결과보고서’에서도 ‘투자주식 등 실패 또는 사기 피해’에 따른 파산 신청자 비율이 2019년부터 2021년까지는 2%대를 유지했으나 2022년에는 11.3%로 급증했다.



윤진아가명·67는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남편이 본인도 모르는 주식 종목에 투자했다가 주가가 급락하면서 4천만원이나 되는 빚을 지게 됐다. 생활이 막막해지고 자녀에게 빚을 대물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면서 지난해 파산 신청을 했다. 그는 “자꾸 안 좋은 생각까지 하다가 파산 신청을 하면서 살길이 트이게 됐다”고 했다.



간병이나 사기 피해, 주식이나 코인 투자 실패 등으로 가족 구성원 가운데 한곳에서만 구멍이 나도 채무의 부정적 효과는 순식간에 번진다. 유순덕 주빌리은행 상임이사는 “보통 가족 중 한명의 신용이 한계에 다다르면 가족들의 신용을 끌어들여서 빚을 갚게 된다. 한 사람만 빚을 진 뒤 채무 조정을 해서 굴레를 끊으면 되는데, 그게 아니라 온 가족이 돌려막기를 하다 보니 결국 모두가 돈을 구할 데가 없어져야 끝나게 되는 것”이라며 “개인이 제때 채무 상담을 해서 빚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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