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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둘 낳고 이룬 교사 꿈…그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빚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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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9회 작성일 24-02-05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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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의 반지하방 계단. 빛이 들어오지 않아 대낮에도 어둡고 캄캄하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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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희가명·40는 응급실에서 눈을 떴다. 2019년 10월15일 새벽이었다. 전날 밤 강연희는 남편과 함께 수면제를 먹었다. 7살과 5살이던 아이들에게도 먹였다. 잠들기 전에 피운 연기로 인해 남편과 두 아들은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숨졌다. 강연희는 숨이 붙어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강연희는 두 아들에 대한 살인과 남편에 대한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은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강연희가 벌인 ‘살해 후 자살’ 시도는 극단적 유형의 아동학대 범죄다. 다만 강연희를 범죄로 내몬 배경에는 수십억원의 빚이 낳은 사회적 압박이 있다. 파산에 이른 가정 경제의 붕괴가 살해 후 자살이라는 극단적 공멸로 가족을 몰아붙였다.





가족 살해·극단선택 원인 1위 ‘경제’





이는 한국 사회에서 낯선 일이 아니다. 한겨레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빅카인즈’에 접속해 검색해봤더니, 2명 이상의 가족이 가족 간 살해와 극단적 선택으로 집단 사망한 사건은 2021년부터 3년 동안 모두 63건 발생했다. 사망자는 168명이나 됐다. 63건에는 가족 살해 후 자살이 40건, 동반자살이 10건 포함돼 있었다. 나머지 13건은 살해 후 자살인지 동반자살인지 보도로는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63건 가운데 경제적 원인으로 인한 사건이 31.7%20건였고, 관계 문제로 인한 사건이 17.5%11건, 돌봄과 간병 문제로 인한 사건이 12.7%8건였다. 한겨레가 대법원 판결문 열람 시스템에서 2018년부터 5년 동안 가족을 살해한 뒤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남은 범죄자의 판결문 10건을 추려냈더니, 여기서도 7건에서 대출과 채무, 파산과 같은 경제적 원인에 대한 언급이 발견됐다.



한국에서 처음 살해 후 자살의 실태를 연구한 2022년 한국심리학회지 게재 논문 ‘국내 살해 후 자살의 현황과 특성’에도 경제적 원인에 따른 가족의 공멸 상황이 분석돼 있다. 이 논문은 ‘경찰 수사기록을 통한 자살사망자 전수조사’ 자료를 이용해 2013년부터 5년 동안 벌어진 살해 후 자살 269건을 분석했는데, 가족·동반자 살해 후 자살로 분류된 242건 가운데 ‘경제 문제’가 포함된 사건은 41.7%101건나 됐다.



논문은 “경제 문제 중에서도 부채 및 파산 문제를 지닌 경우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논문 저자인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최진화 박사는 “과거 아이엠에프IMF로 인해 국가 전체가 경제적 위기에 있을 때 가족 살해 후 자살이 증가했다는 선행 연구도 있었다”며 “우리나라는 돈이 없으면 가족이 함께 힘들어질 거라는 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사건 수사 관계자와 지인의 진술, 법무부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사건 공소장과 판결문 내용을 종합해 강연희의 살해 후 자살 시도 사건을 깊게 들여다봤다.







“애들 과자 사 먹일 천원이 없어”





불행의 시작은 2017년이었다. 금융계에서 일하는 남편의 사업이 계속 망해가며 수십억원의 채무가 생겼다. 남편은 강연희의 명의로도 적지 않은 돈을 빌렸다. 남편은 상황이 심상치 않을 때마다 고액의 납입금이 찍힌 통장을 보여주며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사실이 아니었다.



상황은 2019년 9월20일 임계점에 이르렀다. 강연희가 교사로 일하는 초등학교에 사채업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남편이 빚을 졌으니 당신이 연대보증을 하라”고 말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이들을 제지했지만, 이들은 나흘 뒤 학교에 다시 찾아왔다. 동료 교사들은 물론이거니와 학생들까지 모두 강연희의 경제적 문제를 알게 됐다.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은 30대의 나이에 임용 준비를 시작해 남들보다 늦게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기 시작한 강연희는, 이런 모든 노력이 무너진 상황에 절망했다.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하고, 사건 발생 하루 전까지 이사할 집을 알아보며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강연희는 결국 가족 살해 후 자살이라는 공멸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강연희의 지인은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학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렵게 얻은 직장이었는데 사채업자들이 찾아오면서 연희가 더는 학교에 나가지 못하게 됐다고 생각했어요. 사건이 일어났을 무렵에는 ‘아이들 과자 사 먹일 천원이 없다’고 말하더군요. 이런 충격들로 인해 우울증이 급성으로 찾아온 것 같습니다.”



파국을 겪고도 강연희의 빚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하고 3년이 지난 2022년 강연희가 수감 중인 교도소로 소송 서류가 날아왔다. 원고는 ○○대부 등 대부업체 2곳. 이 업체들이 강연희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채무 수천만원의 변제를 요구하는 민사 소송을 낸 것이다.







가족 3대 파국으로 내몬 30억원대 빚





채무 압박을 견디다 못해 3대가 파국을 맞은 사건도 있다. 대구에 살던 장호태가명는 아내가 부동산 업체를 운영하다가 30억원대 빚을 졌다. 2020년 4월 장호태는 아내45와 함께 질소가스 흡입으로 어머니67와 아들12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했다.



어머니와 아내, 아들은 숨진 채 발견됐고, 장호태만 중환자실로 옮겨져 극적으로 깨어났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존속살해, 아들에 대한 살인, 아내에 대한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12년, 2심에선 징역 17년형이 선고됐고, 대법원에서 2심형이 확정됐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장호태는 자신의 혐의 방어에 별다른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다 가족 사망 1주기가 되던 날 교도소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돌봄 부담이 경제적 곤궁함으로 바뀌어 공멸로 나아간 사건도 있다. 이성자가명·41는 2019년 발달장애를 지닌 9살 딸을 살해하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이성자는 딸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감당하느라 자신이 3600만원, 남편이 1억5천만원의 빚을 졌다. 그러다 울산의 한 방사선 업체에서 일하던 남편이 실직하면서 삶의 의지를 잃게 됐다. 이성자는 개인파산, 남편은 개인회생을 신청했지만, 이성자는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비극으로 치달은 파산 가족들의 배경에는 채무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가 자리한다. 한국사회복지학회 학술지 게재 논문인 ‘가계 부채가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박정민·오욱찬·구서정, 2017을 보면, 가처분소득 대비 총부채액 비율이 400%를 넘는 경우 그 비율이 100% 미만인 경우보다 우울감을 느낄 가능성이 1.5배 높았다.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상환액 비율이 30%를 넘으면 이 비율이 10% 미만일 때보다 우울감을 겪을 확률이 1.7배 증가했다.



채무자들의 도덕적 압박감도 정신적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2019년 음식점을 차렸다가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으며 빚을 지고 2022년 폐업한 홍선희가명·68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채무에 대해 얘기하며 “죄송하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해서 썼다.



그는 “빚을 결국 갚지 못하는 마음에 미안함이 컸다”며 “추심전화가 올 때도 정말 미안하고 죄지은 마음, 압박감이 컸다. 스트레스로 원형탈모가 생길 정도였다”고 말했다.



개인전을 개최했다가 실적이 좋지 못해 제1~2금융권 등에 빚을 졌다가 파산까지 이르게 된 미술가 박강천가명·65 역시 “채무자로서 돈을 갚지 못해서 도덕적으로 미안했다”며 “파산하면 빚이 탕감되니까 파산 신청을 해도 되나 고민도 했었다”고 말했다.



2014년 2월 생활고를 비관해 방세와 공과금만 남기고 함께 목숨을 끊은 서울 송파 세모녀의 집.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파산 가족 압박하는 혹독한 채권추심





무엇보다 추심 압박이 정신적 스트레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2009년 제정된 채권추심법에 따라 채권자의 과도한 추심 행위는 금지돼 있다. 채무자를 폭행·협박·체포·감금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반복 방문하면 처벌된다. 채무자 동료나 가족 등에게 채무 사실을 알리는 행위도 금지돼 있다.



하지만 법은 현실을 제어하지 못한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에 의하면, 지난해 상반기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상담·신고된 불법사금융피해 건수는 모두 6784건으로, 전년도 같은 시기5037건에 견줘 34.7%나 늘었다. 특히 미등록 대부업체에 대한 신고2561건 비중이 가장 컸다.



채권추심법 위반 사범의 구속률도 1%에 불과하다. 2022년 한해 동안 1177건의 불법사금융 사건에서 2085명이 검거됐는데, 구속된 사람은 22명1.1%이었다. 게다가 채권추심법 위반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가 지난 7월 펴낸 ‘2023 양형기준’을 보면 ‘반복적 또는 야간 방문, 전화 등 행위’는 ‘기본 4~10개월’, ‘폭행·협박 등 행위’는 ‘기본 6개월~1년6개월’ 양형에 그쳤다.



실제로 2020년 6월 울산에서 미등록 대부업체를 운영하며 반년 동안 채무자 444명을 상대로 4억여원을 대출해주고 이자율이 연 4867%에 달하는 고리를 뜯으며 채무자에게 “산에 데려가서 정신교육을 시키겠다”는 협박을 일삼은 대부업자들이 지난해 10월 징역 4~6개월, 추징금 7200만~8800만원에 그치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기도 했다.



박세연가명·63도 혹독한 채권 추심에 시달렸다. 박세연은 2022년 건설사에 다니던 동거인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자재 수출이 막히면서 빚이 쌓였다. 박세연도 음식점을 운영하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며 폐업했다. 카드로 대출이자를 갚다가 연체가 시작됐고, 박세연의 카드 빚과 동거인의 빚에 대한 추심이 이어졌다. “하루에도 수십통의 전화가 걸려 왔어요. 추심하는 사람이 여러 차례 쫓아오기도 하고, 집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기도 했죠.”



한겨레가 파산 신청자 12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생활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묻는 질문에 ‘채권자들의 추심독촉’이라고 답한 사람이 44.5%57명나 됐다. ‘생활상의 불안감’48.4%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답변이었다.



파산 관재인인 김창수 변호사는 채무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이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고 조언했다. “개인파산을 하더라도 면제재산 제도에 의해 임대차 보증금은 지킬 수 있고, 가구원 수에 따라 최저생계비를 책정하고 나머지를 변제하기 때문에 기초적인 생활비를 뺏어가는 일도 없습니다. 이런 점들이 잘 알려지면 극단적인 상황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앞서 소개한 논문 ‘국내 살해 후 자살의 현황과 특성’에서 연구진은 “일본은 빚이 있는 사람에게 변호사 무료 상담과 중재를 해주는 협의회를 운영하고 있고 2011년부터는 경제적인 고통을 사회적으로 해결하려는 정책을 수행해 경제적 원인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18.5%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자살이 동반된 일가족 사망



자살이 동반된 일가족 사망은 ‘살해 후 자살’과 ‘동반자살’로 나뉜다. ‘동반자살’은 2인 이상의 가족 구성원이 각각 동의에 따라 집단으로 생을 마감한 일을 뜻한다. 반면 ‘살해 후 자살’은 동일인에 의한 살해와 자살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으로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엔 이 또한 ‘가족 동반자살’이라 불렀으나, 피해자가 ‘동의 없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아동인권옹호단체의 문제 제기에 따라 ‘살해 후 자살’로 쓰고 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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