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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인 홀로서기] ① "너도 할 수 있어" 아영씨의 나 혼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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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24-04-2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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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기사
밥, 빨래, 청소도 척척…고된 반복 교육 덕에 얻은 평범한 삶
기념품 가게 취업 성공한 어엿한 직장인…캠퍼스 낭만도 실현

[※ 편집자 주 = 장애인은 특정 시설에 갇혀 살거나 가정집에 머무르면서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동적이고 시혜적인 존재로 여겨지곤 합니다. 비장애인이 때로 기댈 누군가가 필요하듯 장애인 역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이들 역시 충분히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면서 장애인들은 자신의 권익을 실현할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해내기도 합니다. 이에 실제 자립 생활을 하는 중증 지적장애인의 삶과 중증 지적장애인 딸을 자립시킨 엄마의 이야기 그리고 홀로서기를 희망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사회의 장벽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 세 편의 장애인의날 기획 기사를 송고합니다.]

[지적장애인 홀로서기] ①

강릉=연합뉴스 강태현 기자 = "예쁜 휴대폰 케이스나 네일아트를 좋아해요. 산리오, 헬로키티 캐릭터도 좋아요. 귀엽잖아요. 요즘엔 김수현이 나오는 눈물의 여왕이 재밌어요."

취향이 담긴 자신만의 공간을 소개하는 최아영26씨 얼굴이 석류알같이 발갛다.

곱게 칠한 입술과 고데기로 직접 손질한 머리카락, 반짝이는 큐빅이 돋보이는 손톱만 보더라도 한창 외모 가꾸는 데 관심이 많은 대학생 같다.

"집에 손님을 들이는 건 처음"이라며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다가도 좋아하는 걸그룹 아이브의 이야기가 나오면 능숙하게 춤 동작을 선보일 만큼 발랄한 성격의 소유자인 아영씨.

여느 20대 여성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아영씨는 강릉 주문진에서 4년째 홀로 사는 중증 지적장애인이다.

흔히 장애인들은 오랜 기간 가정집이나 시설에서 갇혀 사는 탓에 사소하게는 몸에 걸치는 옷부터 크게는 생활 양식까지 오롯이 자신의 선택이 반영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 이유로 장애인들은 뚜렷한 취향도, 독특한 개성도 없을 거란 편견이 만연하다.

하지만 지난 9일 찾은 7평 남짓한 아영씨의 공간에 켜켜이 쌓인 시간과 일상은 그런 생각에 보란 듯이 반기를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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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할 수 있을까보다 해낼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앞섰던 홀로서기.

4년이 지난 지금 아영씨는 누구보다 씩씩하게 자신의 앞가림을 해내며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들었다.

물론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국을 데우는 법부터 화장실 청소하는 법, 세탁기 돌리는 법까지 온 집안일을 강릉시지적장애인자립센터 선생님들에게 반복적으로 배우는 등 보이지 않는 노력이 뒤따랐다.

비장애인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지만, 평생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살아온 적 없는 장애인들에게는 도장 깨기 마냥 어려운 일이었다.

아영씨 역시 오랜 시간을 할머니와 함께 살았기에 처음엔 서툴렀지만, 이제는 좋아하는 참치김치찌개로 끼니를 해결하거나 빨랫거리를 건조대에 척척 널어놓는 일도 거뜬히 해낸다.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이전과 비교하면 나름 프로 자취러에 버금간다.

얼마 전에는 다리가 아파 들른 집 근처 병원에서 접수, 진료, 수납까지 해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진 지금은 가족들과 센터 선생님들이 무척이나 기특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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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씨는 독립과 동시에 경제 활동도 하고 있다.

장애연금과 주거 보조금이 나오긴 하지만 월세를 비롯해 생활비, 보험금 등을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해서다.

아영씨의 일터는 강릉 중앙시장 기념품 가게 월화역 대합실이다.

이곳에서 주5일 4시간씩 근무를 선다.

오전부터 낮까지는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근무 시간인 오후 3시가 다가오면 20분 거리에 있는 가게로 걸어가 일할 준비를 한다.

상품 진열, 손님맞이, 청소는 물론 포장, 계산까지 아영씨의 몫이다.

가게를 차린 전명희 강릉시지적장애인자립센터장은 장애인들에게 "제대로 된 노동을 해야만 그에 따른 합당한 대가를 얻을 수 있다"며 우두커니 자리만 지키고 있는 보여주기식 장애인 채용이 아닌, 제대로 된 장애인 일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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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씨는 이곳에서 열심히 번 돈을 차곡차곡 저금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네일아트를 하거나 코인 노래방에 가는 데 쓰기도 한다.

여느 직장인처럼 일터에서 고단함을 맛보는 날도 있다.

"어린이날처럼 쉬는 날에는 손님이 많아 힘들었어요. 힘든 날은 시내에서 쇼핑하거나 산책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래도 이렇게 번 돈으로 부모님 생신 선물을 사드릴 때는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아영씨는 기자와 함께 집과 센터 등을 오가는 내내 "거의 다 도착했다"라거나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를 설명할 정도로 지리를 꿰고 있었다.

단어나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순간도 있었지만, 머릿속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찬찬히 생각한 뒤 말을 꺼냈다. 그래서일까. 불현듯 대화가 끊겨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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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씨와 가게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는 중증 지적장애인 김유리35씨도 4년 전부터 자립 생활을 하고 있다.

유리씨는 특히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가장 자신 있는 음식은 토마토스파게티.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게 어렵게 느껴져도 유리씨는 "조금씩 혼자 할 수 있는 게 늘어나 좋다"며 뭐든 더 배우려고 한다.

절친 사이이기도 한 아영씨와 유리씨는 최근 캠퍼스 낭만을 즐기고 있다.

이들은 특수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수학능력시험을 보는 데 어려움이 있어 꿈을 이루기 어려웠다.

그러다 강릉영동대와 강릉시지적장애인자립센터 측이 머리를 맞대 지적발달장애인을 위한 휴먼레저음악과를 올해 처음 개설하고, 입학생에게 장학금을 제공하면서 아영씨와 유리씨도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일주일에 한 번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꽤 긴 시간 수업을 들어야 함에도 두 사람의 얼굴에는 늘 웃음꽃이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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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유리씨는 댄스동아리 활동을, 아영씨는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엠티와 축제를 기대하며 캠퍼스를 누비고 있다.

합창단 활동, 수어 선생님, 힙합 가수, 대학 졸업장, 이성 교제, 결혼…. 이들이 앞으로 그리는 찬란한 미래는 각양각색이다.

자립은 이들이 그간 꿈꿔온 평범한 삶으로 나아가는 첫 발걸음이다.

유리씨에게 자립을 준비하는 또 다른 장애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너도 할 수 있어. 나도 했으니까"라는 자랑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는 두 사람에게서 끝없는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taet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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