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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뒤에 가려졌던 팬들, 콘텐츠의 주인공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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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07회 작성일 24-07-2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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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부터 예능까지… 가수·스포츠 등 팬덤 문화 조명 잇달아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팬들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31일 개봉하는 영화 ‘파일럿’에서 주인공 한정우조정석의 엄마 안자오민애·왼쪽는 트로트 가수 이찬원의 열혈 팬으로 ‘덕질’ 유튜브를 운영하며 가수가 방문한 맛집을 따라 ‘성지 순례’를 다닌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팬들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31일 개봉하는 영화 ‘파일럿’에서 주인공 한정우조정석의 엄마 안자오민애·왼쪽는 트로트 가수 이찬원의 열혈 팬으로 ‘덕질’ 유튜브를 운영하며 가수가 방문한 맛집을 따라 ‘성지 순례’를 다닌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나는 이 영화를 ‘오타쿠마니아 로맨스’라고 부른다.”

영화 ‘수카바티: 극락축구단’31일 개봉의 선호빈 감독은 국내 최초로 축구 서포터스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이렇게 정의했다. 2004년 안양 LG 치타스가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한 뒤, 안양 팬들이 절치부심해 9년 만에 시민 구단 FC 안양을 창단하기까지 기록을 담았다. 지역팀을 뺏긴 서포터스들이 한 맺힌 홍염을 뿜어내는 클라이맥스 장면은 그 어떤 로맨스 영화보다 뜨겁다.

영화 수카바티: 극락축구단 /영화사 진진

영화 수카바티: 극락축구단 /영화사 진진

팬을 중심으로 팬덤 문화를 조명하는 콘텐츠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빛나는 스타 뒤의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팬들이 콘텐츠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것. 작은 것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팬들의 ‘과몰입’이 재미 요소다. 선호빈 감독은 “무언가를 미친듯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 이끌었다고 믿는다. 남다르게 진취적인 한국의 팬들이 있었기에 BTS나 기생충도 나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공동 연출인 나바루 감독은 “누구나 1부 리그처럼 살고 싶지만, 현실은 7부·8부 리그일 때도 있지 않은가. 안양 팬들이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보며 위로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반복되는 일상에 권태를 느끼던 이들은 ‘덕후’들을 보며 한때 열정적이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올 상반기를 휩쓸었던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도 아이돌 스타의 죽음으로 좌절했던 열성팬 임솔김혜윤이 과거로 돌아가 선재변우석를 되살리는 시간여행 로맨스. 2000년대로 돌아가 비디오 대여점, 싸이월드, MP3, 인터넷 소설 같은 당시 문화를 녹여내면서 3040세대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혜리 주연으로 8월 개봉을 앞둔 영화 ‘빅토리’도 1999년도를 배경으로 만년 꼴찌 축구부를 응원하는 치어리딩 동아리 ‘밀레니엄 걸즈’의 이야기를 그린다.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열성팬 임솔김혜윤. 잊고 지냈던 ‘팬심’을 떠올리게 하며 열풍을 일으켰다. /tvN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열성팬 임솔김혜윤. 잊고 지냈던 ‘팬심’을 떠올리게 하며 열풍을 일으켰다. /tvN

‘수카바티: 극락축구단’에는 1990년대 PC통신을 통해 모이기 시작해 2002년 한일 월드컵 응원단 ‘붉은 악마’로까지 이어진 축구 서포터스의 역사가 담겼다. 나바루 감독은 “요즘 세대는 월드컵 당시 화면들을 보면서 겪어본 적 없는 순수하고 거대한 에너지를 느낄 것 같다. 표면적으로는 축구 다큐멘터리긴 하지만 당시의 문화를 조명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팬이 직접 편집·제작한 2차 창작물을 게시하는 ‘팬튜브팬유튜브’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팬들의 위상도 높아졌다. 영화 ‘파일럿’에선 주인공 한정우조정석의 엄마가 트로트 가수 이찬원의 열혈팬으로 팬튜브를 운영하는 모습이 나온다. 늘 자식의 행복이 우선이었던 엄마 캐릭터도 시대에 맞춰 변화한 것. 김한결 감독은 “평생 일만 하셨던 저희 어머니가 이찬원 팬이 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100세 시대인데 어머니 캐릭터도 ‘덕질’을 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찐팬구역 /ENA·채널십오야

찐팬구역 /ENA·채널십오야

예능에서도 프로 야구 만년 하위팀 한화이글스의 팬이 주인공인 ‘찐팬구역’, 10개 구단의 팬들이 모여 토론을 펼치는 ‘야구대표자: 덕후들의 리그’처럼 팬의 입장을 대변하는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다. 티빙 예능 ‘야구대표자: 덕후들의 리그’에선 각 지역의 구단을 돌며 구장별 독특한 문화와 팬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1화 롯데 자이언츠 편에서 한 팬은 롯데가 잘하는 팀이냐는 질문에 “못하는 팀이다”, 올해 우승 가능하냐고 하자 “절대 못 한다”고 해 짠내 나는 웃음을 자아냈다.

콘텐츠에서만큼은 하위권 팀의 팬들이 오히려 주목을 받는다. ENA·채널 십오야 예능 ‘찐팬구역’의 박인석 PD는 주인공을 한화 팬으로 정한 이유에 대해 “이 프로그램의 근본은 ‘언더도그underdog·열세에 있는 약자’에 있다. ‘오늘의 꼴찌가 내일의 일등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고, 언제든 드라마틱한 역전이 기다리고 있다’라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야구에 스며들어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오타쿠 로맨스’의 법칙,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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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진 기자 qortnwl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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