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일에 끼이고 유리 찔려도…안전장비는 목장갑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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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사각지대 놓인 재활용 선별 노동자들
전문가들 “구체적인 안전 기준 마련해야”
전문가들 “구체적인 안전 기준 마련해야”
지난 7일 오후 2시 경기도 구리 자원회수시설 내 재활용 선별장. 플라스틱 그릇과 양동이, 배달용기 등이 폭 1m의 레일을 타고 와르르 쏟아져 내려왔다. 레일 양옆에 바짝 붙은 16명은 모두 앞치마와 마스크, 장갑을 끼고 있었다. 허리를 굽혔다 펴기를 반복하며 양손으로 쓰레기 더미를 쉴 새 없이 헤치고 있었다. 매일 약 25t의 쓰레기 속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물품을 골라내는 일을 하는 이들은 재활용 선별원이라고 불린다.
배달 음식 용기 속 남은 음식물과 썩은 배추 등이 레일을 타고 내려오자 순식간에 시큼한 악취가 선별장을 가득 채웠다. 20년차 선별원 이모61씨는 “썩은 음식이나 동물 사체가 들어오면 그 지독한 냄새가 온종일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약 30평99.2㎡의 재활용 선별장에 환풍구는 4개뿐이었다. 환풍구 한 개가 성인 손바닥으로 가려질 만큼 작아서 악취를 빼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작업장 곳곳에는 예상하기 어려운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한 선별원이 깨진 소주병에 들러붙은 비닐을 떼어내자 유리 조각이 휙 하고 튀어 올랐다. 하마터면 유리가 눈에 들어갈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바로 옆에서 일하던 조모54씨는 “유리 조각이 튀는 건 하루에도 몇 번씩 있는 일”이라며 “유리 조각이 들어가면 비비지 말고 인공눈물을 넣어 빼자는 우리끼리의 규칙이 있다”고 말했다. 지급된 보호 안경이 있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고 어지러워 착용이 힘든 상태였다.
이날 작업장에선 작은 화재도 발생했다. 대형 톱니바퀴 모양의 기계가 자석 역할을 하며 고철을 분류하는데, 한 배터리가 기계와 부딪히며 불꽃이 일었다. 선별원들은 익숙한 듯 주변의 소화기로 화재를 진압했다. 마스크로 가려지지 않은 그들의 코 부위에는 까만 잿가루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언제 불이 났냐는 듯 연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레일 앞에 섰다.
7년차 선별원 김모58씨는 “칼이나 깨진 유리 조각에 손가락이 찔리거나 장갑이 레일에 끼이는 사고가 발생해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쓰레기를 빠르게 골라내야 한다”며 “기계처럼 일하지 않으면 하루 작업량을 끝마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약 1초에 1개꼴로 쓰레기 더미에서 페트병들을 솎아냈다. 이들은 하루 8시간 일하는데, 월급은 최저시급에 준하는 180만~200만원을 받는다.
재활용센터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경기 김포재활용센터에서 60대 노동자가 추락했다. 지난 6월 서울 용산 재활용품 처리공장에선 50대 노동자가 압축기에 끼여 사망했다.
하지만 재활용 선별원에 대한 안전 기준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현행 폐기물관리법에는 폐기물을 수집하고 운반하는 노동자에 대한 안전규정이 명시돼 있다. 날카로운 물건에 베이지 않도록 베임방지 장갑을 착용해야 하고, 미끄럽지 않은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식이다. 재활용 선별원에 대해서는 이 같은 안전 규정이 없다.
실제로 선별원들은 면장갑이나 비닐장갑, 일반 목장갑을 겹쳐서 낀 채 일하고 있었다. 얇은 앞치마가 그들이 입는 장비의 전부였다. 조씨는 “옷이나 머리카락이 레일에 자주 끼어 늘 긴장하며 일한다”고 말했다. 레일 작동을 멈출 수 있는 비상 버튼은 레일 하단에 9개가량 마련돼 있었지만, 실제 선별원들이 일하는 도중 바로 누르기는 힘든 구조였다.
안현진 여성환경연대 팀장은 19일 “재활용 선별 노동자들은 쓰레기에서 나오는 유독가스나 날카로운 물건 탓에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며 “이들의 안전을 보장할 보호안경, 장갑, 작업복과 같은 기본 장비를 지급하는 규정을 만들고, 위험 상황 대처 시나리오를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리=윤예솔 기자 pinetree2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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