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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했던 시신 떠올라" 속울음 삼키는 소방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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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5-01-1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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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참사 이후 트라우마 시달려
소방관들이 지난달 30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소방관들은 참혹한 재난 현장에 투입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심리적 지원 체계는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뉴시스

무안 제주항공 참사 현장에서 시신 수습을 위해 투입된 소방관 일부가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이들에게 이번 참사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잔혹한 재난 현장’이었다. 일상으로 복귀했지만 당시 기억이 떠올라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데다 고통을 해소할 방법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로 소방관으로 근무한 지 7년차인 A씨는 참사 수습 이후 ‘다 지나간 일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 다독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떠오르는 참사 수습 당시의 기억은 그를 괴롭히고 있다. A씨는 지난 7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스팔트 길을 보면 공항 활주로에 수십 구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맡은 일 해낼 수 있을지 두려웠다”

A씨는 참사 당일인 지난달 29일 시신 수습 임무에 투입됐다. 24시간 넘도록 쉬지 않고 초기 시신 수습에 사력을 다했다. A씨는 “소방관으로 근무한 지 올해로 7년차지만, 이 정도로 참혹한 현장은 처음이었다”며 “30년 이상 근무한 분도 이 정도의 재난은 처음이라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시신들의 훼손이 너무 심했고, 너무 많은 시신이 활주로에 흩어져 있었다는 것”이라며 “내가 맡은 일을 해낼 수 있을지 너무나 두려웠다”고 말했다.


참사 현장에 함께 투입됐던 A씨 동료들도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지만 이를 입 밖으로 꺼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소방관 B씨는 “사고 현장이 떠오를까 봐 뉴스도 안 본다”며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얘기하려면 사고 현장을 떠올려야 해서 아직은 힘들다”고 말했다. 현장에 투입된 다른 소방관들도 소방노조에 “더 큰 고통과 슬픔이 있는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내가 힘들다고 얘기를 꺼낼 곳이 없다”며 “그런데도 잠시 쉴 때면 참사에 대한 기억과 충격들이 어김없이 떠올라 힘들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소방관들은 유가족 앞에서 희생자를 애도하면서 묵묵히 맡은 일을 해왔다. 유가족 지원이 최우선이었던 초기 수습 현장 상황은 열악했다. 이들이 투입된 활주로 인근에는 화장실도, 휴식할 수 있는 공간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명확한 지침 없이 현장에서 대기하는 시간도 길었다. 하지만 이를 감내하는 것은 온전히 소방관들의 몫이었다. A씨는 “현장에 투입된 대원들은 24시간 이상 30시간 미만으로 근무하고 퇴근했다”며 “너무 힘들었지만 유가족들의 아픔에 비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 직업이 원래 그래’라는 말

뉴시스

참사 현장에서 일상으로 복귀해 근무하는 동안 이들에게 찾아온 건 고립감이었다. 주변 동료 중에는 ‘소방관이 이런 일도 겪을 수 있다’ ‘우리 직업이 원래 그렇다’며 별일 아니라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A씨는 “초기에 시신을 수습한 경험이 없고 현장 출동을 하지 않았던 직원, 당일에 왔더라도 비교적 늦게 도착한 직원이 종종 그런 표현을 하더라”며 서운함을 표출했다. 그러면서 “가족이나 지인, 다른 직원들이 같은 경험을 하길 원하지는 않지만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원망스러운 마음도 든다”며 “이들에게 내가 겪은 걸 나눌 수 없고, 나누기를 원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소방청 내부에 마련된 트라우마 지원체계는 심리적으로 고립된 소방대원들을 세심하게 보살피는 데 한계가 있다. 노조와 소방관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본부에 상주하는 상담관들이 있지만 근무시간에 찾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맡은 업무와 다른 직원들의 시선도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한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소방관들은 행여 자신의 상태가 보고돼 피해를 볼까 두려운 마음도 크다. 외부 기관에서 치료를 받은 뒤 비용을 청구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역시 스스로 힘들다고 먼저 알려야 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참사 경험자들의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무안국제공항에 현장 상담실을 운영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소방관들이 치료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유가족 지원을 우선시하는 상황에서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이 상담실을 찾아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유가족뿐만 아니라 참사 수습에 투입됐던 경찰관과 소방관들까지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게 창구를 열어뒀지만, 찾아오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각종 재난에 투입돼 인명을 구조하는 소방관 10명 중 4명은 심리 질환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청에 따르면 소방관 5만2802명 중 43.7%2만3060명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 수면장애, 문제성 음주 등 4가지 심리 질환 중 1개 이상 질환에 대한 관리나 치료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의 생명을 구하다 받은 상처를 치료해주는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소방관들은 긴급한 상황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하다 보니 위계질서가 강하고, 개인의 아픔이나 고통을 표현하기 어려운 조직 문화가 있다”며 “교대 근무 환경에서 일상적인 취미나 대인관계를 갖기가 훨씬 힘들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또 “소방관들이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장벽들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며 “전문적 인력이 비밀을 보장하고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무안=김용현 윤예솔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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