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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 10㎏ 들고 낑낑…407호 어디죠? 있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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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7회 작성일 25-02-15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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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신림동 고시촌 맡아
택배 분류·배송해보니
조유미 기자가 서울 관악구 신림9동에서 택배 기사와 함께 배송을 하고 있다. 비슷비슷한 빌라가 많아 어느 건물인지 헷갈렸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조유미 기자가 서울 관악구 신림9동에서 택배 기사와 함께 배송을 하고 있다. 비슷비슷한 빌라가 많아 어느 건물인지 헷갈렸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감귤 10㎏ 한 박스, 목적지는 407호, 현관 비밀번호 ‘1234’. 누른다. “비밀번호가 틀렸습니다.” 잘못 눌렀나? 다시. “비밀번호가 틀렸습니다” “비밀번호가 틀렸습니다”....

이보세요, 현관문씨. 안 틀렸거든? 어수룩한 택배 기사에게는 문을 열어 줄 수 없다는 거냐! 씩씩거리는데 옆 빌라 배송을 마친 택배 기사가 안쓰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샤프 버튼과 열쇠 모양 버튼을 먼저 누르세요.”

현관 앞 ‘툭’, 반가운 택배 도착 소리. 그 ‘툭’, 집 안에서 발 뻗고 듣기나 했지 배송은 처음이다. 코로나 기간에 대면 배송이 사라지며 “택배 왔습니다~” 소리는 ‘툭’ ‘쿵’ ‘바스락’ ‘무음’, 가끔 ‘쓱’? 등등으로 대체됐다. CJ대한통운이 주 7일 배송을 시작해 최근엔 그 소리를 일요일에도 간혹 들을 수 있게 됐다. 지난 10일 영하의 날씨에 택배 기사와 동행하며 분류 작업과 배송을 직접 해 봤다. 고수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하루. 개인 정보가 될 수 있는 숫자 등은 모두 다르게 바꿔 표기했다.


◇눈이 있는데 왜 안 보이니

오전 8시 50분, 서울 금천구에 있는 1500평 규모의 대한통운 가산동 택배 터미널 지하 작업장. “철커덩, 철커덩.” 컨베이어 벨트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하루 평균 물량 4만5000여 개가 이곳에서 구역별로 분류된 뒤 택배차를 타고 어딘가로 주인을 찾아간다.

내게 주어진 분류 구역은 관악구 미성동洞. 작업 조끼 차림의 한 여성이 벨트 앞에 초연히 서 있었다. ‘분류 도우미’란다. 일명 ‘까대기’라 불리는 분류 작업은 과거 배송 기사가 직접 했지만, 대한통운은 이제 분류 인력을 따로 둔다.

5년 차 베테랑 분류 도우미인 김모47씨 옆에서 작업을 배우는 모습.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5년 차 베테랑 분류 도우미인 김모47씨 옆에서 작업을 배우는 모습.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상차 작업은 힘들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상차 작업은 힘들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5년 차 김모47씨는 ‘베테랑’ 분류 도우미. 메인 벨트를 타고 쏟아져 내려오는 택배 박스는 운송장 정보에 따라 네 구역씩 묶어 1차 분류된 뒤 ‘바퀴 모양 휠휠소터’을 타고 도우미가 서 있는 ‘날개’사람이 서 있는 사이드 벨트로 떨어진다. 운송장에 적힌 ‘관악미성P01’ ‘P02’ 등의 문구를 보고 택배차 정차 공간에 박스를 분류해 쌓는 게 업무. 문구는 특정 기사의 배송 물량을 의미한다고. 같은 동이나 아파트 단지에서도 배송 기사가 나뉘는 경우가 있어 이런 방법을 쓴다.

김씨가 박스를 쓱 보고 분류하는 시간은 과장 없이 1초, 눈이 동태인 내가 실눈 뜨고 살피며 멈칫, 우왕좌왕 분류하는 시간은 하세월. 겨우 하나 쌓았더니 김씨가 다가와 재정리한다. “찢어질 수 있는 포장재는 별도 박스에, 무겁고 큰 박스는 앞에, 작은 박스는 그 옆이나 위에 쌓아야 기사가 차에 싣기 편해요.”

“시장이네.” 그가 박스 하나를 보며 말했다. 눈을 씻고 봐도 운송장에 ‘시장’이란 문구는 없었다. ‘땡땡길39’라고 적혀 있을 뿐. “어떻게 아셨느냐” 묻자 “주소가 잘못된 것 같으면 확인하는 것도 일”이라며 “배송지 모두를 꿰뚫고 있기에 어디인지도 안다”고 했다. 김씨의 작업대 앞엔 ‘P01 기사. 41X-18·19·20·21….’ ‘163△-2·3·4·5… 7동·8동….’ 등의 문구가 적힌 A4 용지가 붙어 있었다. 외우기 위해 손글씨로 직접 썼단다.

2시간 남짓 분류 작업 완료. 생각보다 일찍 끝난 건 주 7일 배송으로 부담을 던 이유도 있지만, 전통적으로 월요일은 물량이 적은 날이다. 화요일이 대목으로 꼽힌단다. 주말 사이 주문한 물량이 허브 터미널을 거쳐 화요일에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 많게는 2~3배까지 차이가 난다고.

강세호 지사장은 “들쭉날쭉한 물량을 비슷하게 맞추면서 거래처 확보로 평균 물량 역시 늘리는 게 주 7일 배송의 목표”라며 “한 기사가 7일 모두를 근무하는 게 아니다. 수입이 줄지 않도록 물량을 나눠 주 6일 근무를 주 5일로 바꿔 나가자는 것”이라고 했다. 박스 크기나 무게 등에 따라 건당 800~1100원을 받는 배송 기사의 벌이 특성상 물량이 늘면 수입도 느는 효과가 있다고. 물론 아직 시행 초기인 만큼 효과는 두고 봐야 안다.

배송 기사는 통상 오전 10시 30분에서 11시 사이 출근해 박스를 차에 싣고상차 배송지로 출발한다. 이날 휴무인 다른 배송 기사의 물량을 합해 아파트 단지 포함 총 120여 박스를 배송해 보기로 했다일을 많이 하고 싶은데, 너무 적어.

날다람쥐 같은 택배 청년.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날다람쥐 같은 택배 청년.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긍정맨 택배 청년 양지훈씨가 배송을 하고 있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긍정맨 택배 청년 양지훈씨가 배송을 하고 있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고수의 배송은 다르다

아냐, 다시 보니 많은 것 같아?. 배송 시작 30여 분 만에 손바닥 뒤집듯 바뀐 생각. 줏대 없다고 손가락질해도 좋다. “운동이 따로 필요 없겠네요, 하하.” 가파른 언덕길을 기어오르던 난 말을 한다는 핑계로 멈춰 쉼했다. 내가 맡은 구역은 신림 9동, 일명 ‘신림동 고시촌’이다. 큰길에 택배차를 세운 뒤 박스를 들고 갈림길을 타고 오르거나, 내려가 배송을 해야 한다. “집 가까이에 차를 대면 안 되느냐” 묻자, “주정차 구역이 정해져 있다”고.

미소가 아름다운 택배 청년 양지훈32씨가 방긋 웃으며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라고 했다. 양씨의 왼쪽 가슴에는 작은 ‘웹캠’이 달려 있었다. CCTV가 없는 건물에서 종종 “기사가 물건을 던져 내용물이 파손됐다”는 항의 등이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양씨의 왼쪽 가슴에는 작은 ‘웹캠’이 달려 있었다. CCTV가 없는 건물에서 종종 “기사가 물건을 던져 내용물이 파손됐다”는 항의 등이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양씨의 왼쪽 가슴에는 작은 ‘웹캠’이 달려 있었다. CCTV가 없는 건물에서 종종 “기사가 물건을 던져 내용물이 파손됐다”는 항의 등이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고시촌 빌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3~4층짜리로 높지 않다는 것. 양씨는 날다람쥐처럼 계단을 타고 올랐고, 난 나무늘보처럼 어기적어기적 올랐다. 저질 체력이었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양씨가 비교적 가벼운 박스를 건넸다. 콜라 같은 음료 묶음이나 쌀이 역시나 가장 무겁단다. “귤은요?” 물었다. “가벼운 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미용사였던 양씨는 4년 전 택배 일을 시작했다. 결혼 준비를 하며 “오후 6시 이후나 주말 모두 근무해야 하는 미용 일의 특성상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이 적었기 때문”이라고. 곧 태어날 ‘꿀꿀이’태명를 위해 요즘은 더 번개 같은 속도로 배송하고 있다고.

그는 최근 평균 오후 3~4시, 늦어도 보통 오후 6시 이전에 배송을 마친다. 하루 평균 300여 개를 배송하고 월급은 500만~600만원 정도. 처음부터 이런 속도는 아니었단다. 양씨는 “첫날 일을 시작하고 택배차 안에서 울었다”고 했다. 아침 일찍 나와 배송을 시작했는데, 밤늦도록 적재함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 초보에겐 가혹하게도 그날은 폭설까지 내렸다. 양씨의 구역은 비좁고 가파른 길이 많아 눈이라도 내리면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단다.

‘노하우’를 묻자 “그런 건 없다. 다만 딱 한 달을 버티니 익숙해지며 속도가 붙더라”고 했다. 그러나 옆에서 본 그는 확실한 베테랑이었다. 집집마다 다른 현관 비밀번호를 모두 외웠고, 주소만 보고도 어느 건물인지 알았다. 호수만 보고도 왼쪽 집인지, 오른쪽 집인지 알았으며 한 건물에서 여러 건을 배송해야 할 땐 낮은 층부터 순서대로 박스를 쌓아 들고 나갔다. 덕분에 요즘은 아내에게 저녁밥을 차려 줄 만큼 여유가 생겼다고. 양씨는 “나는 아내를 몹시 사랑하며 이 내용이 기사에 꼭 들어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넣어 드린다.

이럴 수가, 이 아파트 단지에는 7호가 없어!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이럴 수가, 이 아파트 단지에는 7호가 없어!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귀신이 보낸 택배?

마지막 배송지인 아파트 단지로 향한다. 일을 하며 가장 힘든 순간을 묻자 양씨가 “고객이 택배를 먼저 배송해 달라고 할 때”라고 했다. 많게는 하루 7~8명씩 전화가 오는데, 경로가 뒤죽박죽이 되는 건 물론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단다. 기억하자. 우리가 택배를 ‘남보다 먼저’ 받고 싶어 할수록, 기사님은 퇴근이 늦어진다는 사실.

그래도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적지 않단다. 문고리에 “고생 많으시다”는 쪽지와 함께 간식이나 음료를 걸어 두는 고객도 많다고. 최근에는 택배를 보낸 고객이 “받는 사람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 혹시 택배를 들고 들어갔는지 확인해 줄 수 없느냐”며 그에게 전화를 했다. 택배가 그대로 있어 신고를 했더니, 안타깝게 고독사를 했다고. 양씨는 “그날 이후 며칠째 택배가 쌓여 있는 고객 집 문을 두드려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했다.

7호로 배송을 해야 하는데, 4호 라인 단지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가 “이럴 수가, 이 아파트는 7호가 없어! 혹시 귀신이 보낸 택배?”라며 당황하길 몇 차례. 드디어 오후 1시쯤, 마지막 박스까지 배송을 마쳤다. 파김치가 된 나와 달리 양씨는 거뜬. 택배 일의 강도는 맡은 배송 구역마다 다르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 단지가 좋을 것 같은데, 장단점이 있단다. 고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기사도 있다고.

“오늘 저 때문에 일이 늦어져 죄송하다”고 하자 양씨가 “아니다.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없었다면 1시간은 일찍 끝날 수 있었다는 것이 정설. 앞으로 현관 앞에서 ‘툭’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날의 언덕길이 떠오를 것 같다. 메아리처럼 울리는 택배 청년의 목소리도. ‘택배 왔습니다~’.

조유미 기자가

조유미 기자가 "퇴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택배차 뒤에 앉아 있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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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미 기자 youand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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